지난 주말 서울 인왕산 둘레길을 걸었다. 전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린 뒤 사직공원 옆길을 따라 10분 정도 갔더니 금방 숲길이 나왔다. 흙을 밟으며 오르막 내리막을 숨차지 않을 만큼 걷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푸른 하늘과 남산타워, 광화문 빌딩 숲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청운문화도서관, 윤동주문학관, 청와대 개방 전까지 외부인은 접근 금지였던 칠궁(七宮), 청와대 분수대 광장을 거쳐 서촌까지 3시간 남짓 놀멍쉬멍 하며 걸었더니 휴대폰 앱에 거리 10㎞, 걸음 수 1만3,000이 찍혔다.
5월부터 ‘닥치고 매일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13박15일의 스페인 산티아고순례자의길 걷기 여행 중에는 하루 20㎞씩 걸었고, 귀국한 뒤에도 하루 평균 10~12㎞씩 걷는다. 밀가루 음식을 끊다시피 하고 소식(小食)을 했더니 한 달 반 만에 체중이 5㎏ 줄었다. 내친 김에 최적의 몸 상태인 76~77㎏ 까지 욕심을 내 본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건강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세우며 운동을 게을리했다. 그 사이 야금야금 체중이 늘어 몸매는 D자형으로 바뀌고 일부 혈액검사 수치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넘나들었다. 나도 못 지키면서 강의 중에 “건강습관을 안 지키면 큰 일 난다”고 말했던 게 새삼 부끄러워진다.
사실 나도 걷기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다.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2~3년 동안 '목숨 걸고’ 걸었다. 항암치료 중 제대로 먹지 못해 발걸음 옮기는 것조차 힘들 때도 집 뒤 서울성곽 길을 20~30분씩 걷곤 했다. 걷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암을 물리쳐야 한다는 절실함이 희미해지면서 걷지 않을 핑계거리가 더 많아진 것이다.
사실 걷기는 몸과 마음을 함께 건강하게 만드는 최고의 운동이다. 불필요한 몸속 지방을 태우는 유산소 운동이면서, 보폭을 넓게 하고 오르막 내리막을 잘 활용하면 근육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걷기는 뇌를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걷기 예찬론자인 김종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억울한 감정이 생기거나 화가 날 때,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무조건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걷다 보면 상체로 몰리는 열감이 내리고, 뻣뻣하게 굳은 뒷목이 저절로 풀린다”는 것이다. 걸을 때 시선은 하늘, 숲, 건물 등 주변으로 향하기 때문에 내부로 향하는 감정이 저절로 조절되니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는 데는 걷기만한 게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지론이다.
나는 혼자 걷기를 더 좋아한다.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면서 명상 상태에 빠지거나, 새소리 벌레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들과 대화하고, 내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셀프 코칭을 해보기도 한다.
사실 우리만큼 걷기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전국 어디에서도 20~30분 정도면 산이나 숲, 강, 바다 같은 자연에 닿을 수 있다. 요즘은 미세먼지와 매연도 기승을 부리지 않으니 도심 속 걷기도 나쁘지 않다.
굳이 돈을 들여 피트니스 센터, 요가 교실에 찾아갈 필요가 없다. 일단 운동화로 갈아 신고 사무실 밖으로, 집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해보자. 돈 한 푼 안 들이고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만드는 가성비 최고의 운동이 바로 걷기다. 절실함과 실행력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