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 참모와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에 검사 출신들이 대거 중용되면서,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난 정부의 민변 출신 고위직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언론에서 팩트체크에 나섰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눈길을 끄는 것은 윤 대통령의 언급에 깔린 정치적 논리다.
언제부터인가 소위 '내로남불'은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정치적 수사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이 표현은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자기 편에는 관대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여 비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는 말로 사용된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은 상대방의 주장이 내포한 논리적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주장하는 사람의 도덕적 정당성에 흠집을 낸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그리고 윤 대통령의 언급은 내로남불이라는 수사의 새로운 사용법을 최고 권력자가 직접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는 단순히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방어하는 것을 넘어, 저쪽이 했으니 우리가 하는 것에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선제타격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로남불의 수사(修辭)는 그 효과가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내로남불의 수사는 사안의 내용에 관한 토론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면, 지적 내용에 대한 수용이나 반론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지적하는 사람의 자격에 대한 시비가 뒤따른다. 과거에 범한 잘못이 현재의 지적을 기각하기 위한 유일한 근거로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이쪽도 저쪽도 다 똑같다는 저열한 양비론뿐이며, 양비론이 불러온 냉소와 체념의 진흙탕 아래에서 애초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된다.
지난 몇 년간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민주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릴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잘못이 크다고 평가했다. 두 번에 걸친 전국단위 선거에서 그에 따른 심판을 내렸다. 정치적 책임의 논리는 거기까지에 그쳐야 한다. 집권 당시 민주당이 범한 잘못이 정권 교체 이후 현 정부가 원하는 대로 국정을 운영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논쟁은 누구의 입장이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이뤄져야지 누가 더 깨끗한가, 나아가 누가 덜 타락했는가를 따지는 도덕성 싸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법치'에 대한 인식 역시 우려스럽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에 대해 윤 대통령은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버먼트 어토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 국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법치가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률가에 의한 지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지, 잘잘못을 따져 한쪽을 벌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자칫 현 정부의 법치가 상대편의 흠결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우리 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법치가 강조하는 법과 원칙 또한 결국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들 사이에서 이뤄진 정치적 합의에 근거해서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치는 법치보다 넓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