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죽고, 무기는 고갈, 전선은 교착… 우크라는 얼마나 버틸까

입력
2022.06.08 18:35
젤렌스키 "하루 60~100명 전사, 500명 부상"
"최전선 인근 영안실에 전사자 시신 가득 차"
신병 훈련, 무기 조달, 사용법 숙지 등도 난관
군 전문가 "나토 무기 체계로 전환 서둘러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투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러시아군은 물론 우크라이나군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끝없이 화력을 쏟아붓는 소모전 양상이 뚜렷해지는데도 양측 모두 전세를 역전시킬 돌파구는 만들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결국에는 어느 쪽이 인적ㆍ물적 손실을 더 많이, 더 오래 감당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영안실에 전사자 시신 가득”… 우크라군도 막대한 손실

7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州)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남쪽으로 70㎞가량 떨어진 도네츠크주 소도시 바흐무트 지역 영안실에는 최근 우크라이나군 전사자 시신이 밀려들고 있다. 수용 공간이 모자라 한때 영안실 밖 거리에까지 시신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날마다 병사 60~100명이 숨지고 500명 이상 다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간 국민 사기를 고려해 군사력 손실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그만큼 전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서방 관리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맞서 선전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화면서 양측의 손실률이 거의 비슷해졌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에 밀려 졸전을 반복해 온 러시아는 이제 ‘세계 2위 군사 대국’이라는 간판도 내려야 할 처지다. 서방 군사당국은 지난달 중순 기준 전장에 투입된 러시아군 전력이 전쟁 이전과 비교해 58% 수준까지 약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과 북부 전선에서 철수하고 돈바스에 병력을 집결한 4월 중순 이후 파손된 탱크만 761대로, 보유 물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구소련제 탱크가 최근 돈바스 교전 현장에서 목격되면서 무기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소모전은 필연적으로 파괴적 결과를 초래한다. 일례로 82일간 러시아군에 봉쇄됐던 동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에선 주민 2,000여 명이 숨지고 도시 90%가 붕괴됐다. 3주 넘게 집중 폭격을 당하고 있는 세베로도네츠크도 건물 대다수가 부서지고 무너져 평탄화될 지경이다. 벤 호지스 전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은 “러시아가 중세시대 같은 소모전 전략을 택하고 있다”면서 “지난 20년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보다 이번 전장이 훨씬 더 큰 피해를 낳고 있다”고 우려했다.

병력·무기 안정적 조달, 전쟁 승패 가를 듯

현재로선 우크라이나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끈질기게 버티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병력과 무기를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최근 자원 입대자 연령 상한을 폐지할 정도로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는 예비 병력이 충분하다. 항전 의지로 가득 찬 입대 지원자가 너무 많아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훈련시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투에 투입해도 될 만큼 숙련될 시간도 없다.

무기는 또 다른 변수다. 우크라이나군에 익숙한 구소련제 탄약과 무기들을 공급해 온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무기고는 화수분이 아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제공하는 대전차 미사일도 보유 물량이 줄고 있지만, 증산에는 수년이 소요된다. 낯선 서방제 첨단 무기를 손에 익히는 것도 쉽지 않다. 이달 초 미국은 사거리가 80㎞에 이르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도 지원하기로 했는데, 사용법을 배우는 데만 수주가 걸린다.

군사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표준 무기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해군분석센터(CNA) 마이클 코프먼 연구원은 “현재 돈바스 전황은 러시아가 우세해 보이겠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에 유리하다”며 “단, 서방의 군사 지원이 계속될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이 소모전에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경제난이 악화하면 서방 동맹이 분열할 것으로 믿는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종전 해법을 두고 ‘주전파’ 동유럽 국가들과 ‘주화파’ 서유럽 국가 사이에 의견도 엇갈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7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종전 논의가 이뤄져선 안 된다”며 “최종 목표는 빼앗긴 영토를 모두 탈환하는 것”이라고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