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인터뷰] "너를 때리면 나도 아프다... 신냉전 결말엔 승자가 없다"

입력
2022.06.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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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질서는]
주펑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 인터뷰
재편된 국제질서, 유럽발 신냉전을 전망한다
"미국의 단일 패권주의가 신냉전 촉발"
"중국도 우크라 전쟁의 피해자 중 하나
신냉전 회귀는 김정은이 가장 바라는 그림
尹정권의 '동맹' 강화, 중국 내 반한파 키울 것"


"신냉전 끝에는 그 어떤 승자도 없을 것이다."

주펑(朱鋒)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한국일보 창간 68주년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극명해진 신냉전 체제의 '결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미국과 소련 간 경제적 교집합이 없었던 과거 냉전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전 세계는 곳곳이 경제적으로 촘촘히 엮여 있어, 상대방을 때리면 나도 함께 아플 수밖에 없는 질서가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대만 갈등 격화까지, 최근 2, 3달 사이 세계는 신냉전 속으로 급격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주 원장은 '신냉전'이라는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는 배경을 "미국의 단극적 패권주의가 다른 강대국의 안보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예컨대 러시아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1941년 나치 독일이 일으킨 러·독전쟁', 근래 들어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東進)' 등을 겪으며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러시아 진출을 위한 전략적 통로로 활용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적나라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코 합리화될 순 없지만, 신냉전이 촉발된 데에는 서방 측도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이 러시아 제재 대열에 함께하지 않는 이유를 두고 주 원장은 "중국이 미국 요구대로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면, 미국이 과연 중국 때리기를 멈췄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화하는 형국에서 중국으로선 대미(對美) 전선의 한 축인 러시아 때리기에 동참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설명했다.

'동맹 중심'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에 주 원장은 '냉정'을 주문했다. 주 원장은 "만일 한미동맹이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중국 내 반한(反韓) 세력도 함께 커질 것"이라며 이는 중국과 한국 모두의 외교적 재난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 원장은 "북한이야말로 현 상황을 가장 즐기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과 중·러 간 대립이 격화할수록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며 몸값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은 주 원장과의 일문일답.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서구화가 유럽 정치의 숙원이라고 굳게 믿는다. 반면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과 세계 2차 대전 등을 거치며 우크라이나가 서구 열강이 러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전략적 통로'로 활용돼온 역사를 경험했다. 또한 미국과 유럽은 나토가 더 이상 동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 대 미국·유럽 간의 대리전'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전쟁 시작 100일을 넘겼다.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결국은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분할 통치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주권 분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양측이 버티는 동안 세계의 에너지·식량 공급망에 돌아가는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납치되고 있다."

-예상을 깨고 러시아가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패착으로 역사에 기록될까.

"서방의 제재는 분명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그들의 경제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패착으로 기록될 수 있다.

다만, '러시아의 실수였다'고 단정하고 끝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의 대러 제재로 석유·가스·화학비료 시장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가 세계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침공한 러시아의 급격한 쇠퇴를 기대하고 있지만, 국제 정치·경제가 도의와 원칙만으로 굴러가진 않는다."

-미국의 바람대로 중국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순 없었나.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그 자체로 정당하다. 하지만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이나 인도 등도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이유로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해 결국 러시아가 굴복했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 정책을 포기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 중국으로선 더더욱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신냉전 구도는 중국에 이득인가 손해인가.

"이 전쟁으로 중국 또한 큰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 내 대중(對中) 강경파에게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 또한 그대로 둬선 안 된다는 주장을 강화시키며 신냉전을 가속화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 또한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식량 위기를 맞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중국의 외교적 이미지 또한 크게 실추됐다. 이 전쟁에서 중국이 무언가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근본적 원인을 찾자면.

"중미관계의 질적 변화가 주요한 원인이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시작으로 양국은 관계 정상화에 성공했다. 미국은 중국 개혁·개방에 원동력을 제공했고, 중국도 이를 발판 삼아 가장 큰 대미 무역국으로 거듭났다. 반면 1980년대부터 중국의 경제 역량이 미국을 넘보기 시작했다. 미·소 대결이 한창일 때도 소련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71%를 넘어서지 못한 반면 중국은 지난해 미국 GDP의 74%까지 추격했다. 미국 정치 엘리트 그룹 안에선 지금 중국을 눌러두지 않으면 소련을 능가하는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란 위기감이 커졌다. 현 미국의 안보전략이 철저하게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한·일 순방 중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공식 출범시켰는데.

"미중의 디커플링(분리)에 따른 세계 경제의 탈(脫)중국화 시도다. 아·태 지역 국가와 중국 간 거래를 차단해 공급망 시장으로 신냉전 구도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구상이 현실화할지는 의문이다. 구냉전과 신냉전의 본질적 차이는 경제 협력에 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경제적 교집합이 없었지만 오늘날의 미중관계는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다. 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품의 연구·개발·제조·판매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시키겠다는 게 IPEF인데, 실현되면 중국은 물론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도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대만'이라는 말이 외교가에 공공연하다. 대만 해협에서의 미중 간 충돌 가능성은.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 않는다. 중국이 정말로 대만을 '무력 통일'하려 할까.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탓에 무력 통일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제는 중국 인민들의 정서상 '하나의 중국' 원칙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대만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자칫 중국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이 미중관계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가 대만 문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미중 모두 대만 문제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다. 북한의 핵 도발 재개와 신냉전 구도 간에 연관성이 있나.

"현 상황을 가장 즐기고 있을 나라가 바로 북한일 것이다. 강대국 간 대치가 1950년대의 북방 삼각 대결(북·중·소)과 남방 삼각 대결(한·미·일)로 회귀하는 것이라면, 북한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올라가고 이를 빌미로 우방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장 바라는 그림이고, 반대로 한반도 비핵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흐름이다."

-중국은 미국의 인·태 전략에 동참한 일본에 연일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선 압박 수위를 다소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이 한국의 인·태 전략 동참을 마구 비난한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당장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작다. 맹렬한 비난은 현상을 바꿀 수 없고 되레 한국 내 반중 정서만 자극할 것이다. 이 반중 정서가 다시 중국 내 반한 정서를 키우며 양국 민간 정서가 더욱 악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상대적으로 낮게 잡은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신냉전 격화 무드 속에 한국에선 '동맹 강화'를 앞세운 윤석열 정권이 등장했다.

"윤석열 정권은 미국이 주도하는 IPEF에 동참했고, 한미 군사훈련도 확대·강화했다. 한미일 3각 협력까지 서두르고 있다. 요컨대 신냉전 구도에서 미국에 한국의 국익 전체를 걸어버린 모양새다.

이는 중국 내 우북(친북한) 세력 성장과 한국에 대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리적·경제적으로 가까운 양국이 더욱 멀어지는 게 과연 양국이 원하는 바인지 윤석열 정부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최종 결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최종 결정이 아닐 것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집권 초반인 만큼 (국내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팀이 향후 지혜롭게 전략적 선택을 해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신냉전의 최후 승자는 누구일까.

"승자가 있을 리 없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학자들은 미국 주도의 단일 패권이 세계 질서의 중심 축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 같은 학설은 이미 파산했다. 세계 경제는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단 하나의 승자가 존재할 순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세계 질서에 필요한 것은 단일 패권주의가 아니라 균형과 견제다. 중국의 굴기가 세계 권력 구도에 적절한 균형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주펑 원장은 누구

주펑(58)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 학계도 주목하는 국제정치 학자로 꼽힌다. 베이징대에서 국제관계연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와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교수를 거치며 주로 미중관계와 아시아 해양안보를 연구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시 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과 베이징대학 국제전략연구원 부원장, 난징대 남중국해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포스트 냉전시대의 동아시아 거버넌스 문제를 다룬 '국제관계이론과 동아시아안보' 등이 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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