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딱 하나 있던 공원이 사라지니 아이들도 많이 서운해하죠. 계속 ‘놀이터 언제 다시 생기냐’고 묻는데 저희도 모르니 답답할 뿐이에요.”
지난 3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만난 프라임건영유치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치원 맞은편 높은 철제 담장이 설치된 곳엔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무가 우거진 동화공원이 있었다. 봄에는 산수유와 벚꽃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동네를 물들이던 이 도시숲은 주민 모두의 쉼터였다. 그 안에 있던 작은 놀이터는 유치원생들을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공간이다.
하지만 재개발정비사업과 함께 공원은 자취를 감췄다. 이제 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숲은 걸어서 약 25분 거리의 수봉공원. 그마저도 수봉산을 걸어 올라야 갈 수 있는 곳이라 어린아이나 노인이 가기엔 마땅치 않다. 반경 500m 내에는 주택이 빼곡히 들어섰지만 공원은커녕 작은 녹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걸어서 쉽게,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도시숲이 단 1평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1인당 평균 생활권도시숲 면적이 3.3㎡보다 좁은 시군구는 인천 미추홀구(2.3㎡) 포함 13곳이나 된다. 주로 서민층이 터 잡은 곳이다.
생활권도시숲은 주거지 옆 근린공원이나 틈새녹지·가로수 등을 말한다. 나이나 건강상태,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녹지라 할 수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닿을 수 있는 산이나 대공원 등은 제외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인당 평균 최소 9㎡의 생활숲 조성을 권고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체 시군구(228곳) 중 31%에 달하는 71곳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숲은 생존의 문제다. 폭염에 맞서 온도를 낮춰주는 것은 물론 미세먼지를 막고 탄소흡수원의 역할까지 한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용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취재과정에서, 이 도시숲조차 사회 불평등에 휘둘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이 많이 살고 경제력이 떨어지는 곳은 공원 면적도 적었다. 새로 조성되는 도시숲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사유화되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서민들이 사는 곳은 기존 녹지공간조차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지곤 했다.
공원과 무성한 가로수도 부유함의 상징이 된 한국 사회의 모습. 정부는 2020년 6월 9일 제정된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시숲법)’에 따라 생활숲을 확충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도심 속 녹지 불평등은 연구로도 확인됐다. 2019년 ‘포용적 근린재생을 위한 공원정책 개선방안 연구’(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따르면, 노인인구 비율이 높고, 경제수준과 교육수준이 낮은 읍면동일수록 공원서비스 면적 비율과 질적 수준이 낮았다.
서울시내 자치구들의 1인당 생활권도시숲 통계만 봐도 경제수준 및 개발정도에 따라 도시숲 면적이 극과극이다. 연립·다세대 주택 비율이 높은 관악구는 1인당 단 1.08㎡, 금천구는 1.78㎡인 반면 서초구는 37.34㎡다. 자치구의 예산이 많은 것은 물론 아파트가 많아 조경이 풍부한 것도 한몫한다.
도시숲으로부터 소외된 빈틈이 있다면 채워 나가야 하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인당 생활권도시숲이 2.45㎡에 불과한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동북선경전철 공사로 그나마 있던 소규모 공원녹지가 사라졌다.
고령인구가 많은 제기동에 위치한 이 공원은 2018년 2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됐다. 나무 하나 없이 주택과 상가만 빼곡했던 동네에 생긴 유일한 쉼터였다. 사업 당시 시의원이 주민설명회를 여는 등 떠들썩한 홍보도 이어졌다.
하지만 현재는 지하철 환풍구 부지로 선정돼 지난해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조성된 지 불과 약 3년 만에 공원이 사라진 것이다. 주민 백경원(58·가명)씨는 “공원을 제대로 이용해볼 새도 없이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그에 따르면 근처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녹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나오는 아파트의 작은 조경공간이 전부다. 한낮의 온도가 쉽게 섭씨 30도를 넘어서는 여름에는 걸어갈 엄두를 내기 어렵다.
동대문구청과 서울시에 따르면, 그나마 이곳은 경전철 공사가 끝나는 2026년 이후 복원 계획이 있다. 하지만 환풍구를 설치한 뒤 복원하는 터라 기존의 모습대로 원상복구가 될지는 미지수다.
반면 인천 동화공원은 복원계획조차 없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새로 생기는 아파트 단지 바깥에 울타리 개념으로 나무를 심어서 완충 녹지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수목 자체는 보전되지만 주민 생활공간으로서의 도시숲이 유지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개발로 이 일대에 신축되는 아파트 단지들 내에는 조경녹지 및 어린이공원 등 조성이 계획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주민들로선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주민 김혜선(43)씨는 “요즘엔 외부인 출입을 막는 아파트 단지도 많다고 하는데 단지 내 공원이 생긴다고 해도 예전처럼 자주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과정에서 도시숲의 접근성이 낮아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녹지면적 자체는 늘어나지만, 대부분 아파트 내부 조경녹지와 기부채납 공원 등 폐쇄적인 녹지가 증가한 결과다. 최근 몇 년간 신축아파트가 늘어난 서울 영등포구의 경우 2015년 1인당 3.24㎡였던 생활권도시숲 면적이 2019년 6.87㎡로 뛰었다. 하지만 주택가의 도시숲 접근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신혜영 생명의숲 선임활동가는 "도시숲 조성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을 넘어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생태서비스를 축적하고 나아가 지역 주민 간 소통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며 "단순히 면적만을 늘리고 아파트 조경녹지를 확충하는 것을 '보전'이나 '증가'라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도시숲 불평등 심화는 오로지 면적 확충 위주로 설계된 정책과 제도의 결과이기도 하다. 서초구의 풍부한 도시숲이 금천구민에겐 의미가 없지만, 서울시 도시숲 총면적 위주로 보면 문제점이 간과된다. 도시숲법에서는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관할구역 내에 도시숲의 전체 면적이 유지·증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만 정해져 있다.
지자체가 10년 단위로 수립해야 하는 ‘공원녹지 기본계획’의 수립지침 역시 공원녹지율이나 녹피율(녹지로 피복된 면적의 비율) 등 양적 기준 중심이다. 도시숲의 실질적인 접근성이나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적 취약성 등을 따지는 등 형평성과 관련된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환경단체들은 이에 ‘도시숲총량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도시숲의 훼손이 불가피할 경우 지자체 내에 대체 숲을 조성해 총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총량은 면적만을 따지는 건 아니다. 거주민의 수와 도보접근성, 주민 건강 영향, 생물다양성 등 질적 측면까지 고려 대상이다.
다만 이 같은 정책을 도입하고 시행하기까지는 걸림돌이 많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도시숲 계획이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물론, 도시숲의 형평성에 대한 분석도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김용국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조정팀장은 "영국·미국 등은 사회·환경적 지위를 반영한 '공원결핍지수' 등을 산정해 예산단계부터 반영하고 있다"며 "단순히 개발 단계에 수반되는 일괄적인 녹지 조성을 넘어 지역 필요에 따라 '환경문제 대응' '노인·육아지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숲 관리를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