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외교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외교당국과 상의했다”지만 그간 우크라이나 사태에 거리를 뒀던 정부의 신중한 기조가 훼손될 수 있는 탓이다. 우크라이나와 연대는 필요하지만,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행보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 대표를 포함한 국민의힘 ‘한ㆍ우크라이나 자유ㆍ평화 연대 특별대표단’은 조만간 외교부 지원 아래 우크라이나를 찾을 예정이다. 현지 정당의 초청을 국민의힘이 수락하고, 양국 외교당국의 조율을 거쳐 일정이 확정됐다. 관례에 따라 외교부 고위관계자가 이 대표 일행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문은 표면적으로 인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양국 정치권의 교류를 도모하고, 전쟁 피해를 겪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위로하는 차원이다. 그럼에도 대표단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건 전쟁 한복판에 있는 나라에 여당 대표가 방문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러시아의 침공 후 아시아 국가 정당이 현지를 찾은 사례는 없다. 미국의 최우방인 ‘쿼드(Quadㆍ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안보협의체)’ 소속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에도 줄곧 군사 불개입 원칙을 지키는 등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해왔다.
물론 부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 발발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는 만큼, 피해자 우크라이나에 연대 의사를 표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정확히 부합한다. 그간 한국이 대(對)러시아 제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연설 등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다른 주요국에 비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비판을 만회할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 역시 “러시아를 강하게 규탄한 미일정상회담 수위 등을 감안하면 대표단 방문으로 ‘한국이 혼자 앞서 나간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방문의 실익이다. ‘아시아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 대표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받을 게 뻔하고, 외교부 당국자도 동행해 자칫 ‘정부 차원의 외교 이벤트’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 및 군수품 제공에서 원조 범위를 넓히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의 지원 역할은 제한돼 있는데 정치권이 기대만 부풀리는, ‘보여주기’식 행사로 끝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최악의 수는 러시아가 돌변하는 경우다. 러시아는 대러 제재가 가동된 뒤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도 비자발급 간소화 제도 중단 등 보복 조치 대상에서는 제외했는데, 이 같은 균형점이 깨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소식통은 “러시아는 여전히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한국을 곤궁에 몰아 넣을 역량이 있다”면서 “미국과 러시아 양쪽을 상대로 최소한의 양해를 얻어냈던 기존 외교 전략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