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언니' 지은희, 매치퀸 등극… 한일전 넘고 최고령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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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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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언니’가 일을 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지은희(36·한화큐셀)가 3년 4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찜통더위 속에 닷새 동안 총 7번의 라운드를 치러야 하는 ‘매치플레이’ 강행군을 이겨내며 거둔 우승이다. LPGA 투어 최고령 한국인 우승 기록도 갈아치웠다.

지은희는 30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섀도 크리크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매치플레이(총상금 150만 달러) 결승전에서 후루에 아야카(일본)를 3홀 차로 제쳤다. 지은희는 이날 앞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교포 앤드리아 리(미국)를 4홀 차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2019년 1월 다이아몬드 리조트 챔피언스 토너먼트 우승 이후 우승과 인연이 없던 지은희는 '매치퀸'에 오르며 LPGA 통산 6승 고지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22만5,000 달러(약 2억8,000만 원)다.

이날 ‘36세 17일’째인 지은희는 2020년 ISPS 한다 빅 오픈 때 박희영(35)이 세웠던 ‘32세 8개월 16일’을 넘어 LPGA 투어 한국인 최고령 우승 기록도 새로 썼다. 아울러 세계랭킹이 83위까지 떨어져 6월 3일 개막하는 US여자오픈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던 지은희는 이번 우승으로 US여자오픈에도 나설 수 있게 됐다.

지은희는 일본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7승을 올리고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한 후루에를 경험으로 압도했다.

지은희는 퍼트와 쇼트게임이 빼어난 데다 14세나 어려 체력에서 우위인 후루에를 맞아 초반에는 짧은 퍼트를 실수하면서 끌려갔다. 후루에가 더블보기를 한 3번 홀(파4)을 따내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4번(파5), 6번 홀(파5)에서 파를 지키지 못해 1홀 차로 뒤졌다.

그러나 8번 홀(파3) 버디로 반격에 나섰다. 티샷한 볼이 핀을 한참 지나는 듯했지만 경사를 타고 다시 홀 쪽으로 흘러내렸고, 지은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우승의 향방을 가른 것은 9번홀 샷 이글이었다. 67야드를 남기고 웨지로 친 볼은 그린에 떨어진 뒤 홀로 굴러들어갔다. 지은희는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팽팽하던 결승전은 이 한방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지은희는 여유를 찾은 반면 쫓는 입장이 된 후루에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은희는 10번 홀(파4)에서 과감하게 내리막 버디를 시도했지만 빗나갔다. 그런데 지은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파를 노렸던 후루에의 퍼트도 홀컵을 지나쳤다. 다시 기회를 잡은 지은희는 실수하지 않고 파에 성공, 2홀 차로 달아났다.

지은희는 그린을 놓치고 파를 지키지 못한 11번 홀(파4)을 내줬지만 12번 홀(파4)에서 후루에가 3퍼트 보기를 한 덕에 2홀 차 리드를 되찾았다. 16번 홀(파5)에선 네 번 만에 그린에 볼을 올린 뒤 4m 파퍼트를 집어넣었고, 세 번에 그린에 올라오고도 3퍼트 보기를 한 후루에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전날 8강전과 4강전, 이날 준결승과 결승전까지 이틀 동안 4개 매치를 뛴 지은희는 “그동안 거둔 우승 중 가장 힘든 우승이었다”며 “발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허리가 아플 정도로 몸과 정신 다 힘든 한 주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내일 하루 확실하게 쉬고 다시 US여자오픈 출전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은희의 우승으로 올해 한국 선수들은 고진영(27·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김효주(27·롯데 챔피언십) 등 3승을 합작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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