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언젠가는 휠체어를 탄다"...'유니버설 디자인' 전면 도입돼야

입력
2022.05.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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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기획취재공모전 우수상
[휠체어의 굴곡진 여정] 
③ 대중교통이란 무엇인가

편집자주

한국일보 제3회 기획취재 공모전에 당선된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게재합니다. 이번 주는 우수상 작품인 <20년째 '비포장' 도로, 휠체어의 굴곡진 여정>으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밀착 취재했습니다.

“택시가 진짜 ‘대중’교통이 되려면 모든 택시에 휠체어가 탈 수 있어야 해요.”(김영웅 장애인인식개선연구원장)

“근본적 해결법이요?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화되고 장애인이 모든 택시를 탈 수 있게 되는 거겠죠.”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겸 대학원 장애학과 교수)

휠체어 사용자가 대중교통을 선택할 순 없을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포용적 교통수단’이 근본적 해답이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만들자는 뜻이다. 특별교통수단과 버스 개조, 특별 좌석은 장기적 관점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포용적 교통수단이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등한 이용자로 생각하는 체계다. 설계 단계부터 총체적으로 장애인의 이동을 고려한다.

취재팀은 포용적 교통수단의 사례를 찾기 위해 국내외 연구논문을 살폈다. 또 교통 전문가, 장애인식 전문가, 장애학 교수, 장애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인터뷰했다.

보편적 디자인 안에선 모두가 ‘비장애'

휠체어 사용자가 휠체어 승강장치가 설치된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는 트렁크를 통해 탑승한다. 하지만 블랙캡은 다르다. 교통 약자와 비장애인 모두 차량 옆문을 통해 차에 오를 수 있다. 휠체어 사용자와 동승자가 나란히 앉을 수 있다는 점도 기존 특별교통수단과 다르다. 현재 서울 전역에서도 블랙캡을 볼 수 있다. 운송 서비스 ‘고요한 M’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UD, 연령·성별·국적·장애의 유무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건축·환경·서비스 등을 계획 설계하는 것)이 적용된 영국 프리미엄 택시를 착안해 도입했다. 코액터스, 이큐포올, 닷, 협동조합 무의와 의기투합한 결과다.

하지만 김영웅 원장은 블랙캡이 완전한 대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또 다른 특별 교통수단이에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해요. 모든 택시에 휠체어가 탈 수 있어야 하죠. 휠체어를 탄 사람도 길에서 손 흔들어 택시를 잡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는 KTX 열차 내 유니버설 디자인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기차 한 칸을 접이식 의자로 모두 교체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지금처럼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거죠. 그러다 휠체어 장애인이 예매하면 그 수에 따라 의자를 접어요. 그러면 인원 제약 없이 탈 수 있을 거예요.”

배리어 프리

해외는 휠체어 장애인이 교통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일본은 2000년 '고령자, 장애인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 원활화의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대·폐차하는 교통수단에 대해 물리적 장애물 없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일반택시를 휠체어 탑승 가능 차량으로 바꾸기 위한 표준모델도 제시한다. 일본은 2020년 이후 신차를 무조건 'UD 택시'로 생산한다.

고속철도인 신칸센은 출입구 디딤판에 계단이 없다. 열차 내부도 논스텝(Non-step, 계단이 없는 버스로 바닥 높이를 낮춘 저상버스와 구분된다)이다. 일본과 독일은 모든 버스가 논스텝, 하향 가능(Kneeling, 승강구 발판을 낮추기 위해 차체 앞부분을 내려가게 만듦), 승강장치 장착 버스다. 독일의 일부 버스는 접이식 좌석으로 설계돼 휠체어 탑승 시 공간이 마련된다.

서울시설공단이 발표한 2018년 독일 뮌헨 기획연수 귀국보고서에서 오스왈드 우츠 장애인 자문위원은 “장애인 콜택시 요금을 일반 택시와 동일하게 적용하고, 일반 택시회사가 휠체어 이용 가능한 특장차량을 기준 대수 이상 확보 시 영업을 허가해주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영국 교통부는 장애차별금지법을 포괄한 '평등법(Equality Act) 2010' 등에 근거해 2018년 ‘포용적 교통 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와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정원 22명을 초과하는 모든 버스는 휠체어 탑승·고정설비, 탑승 보조 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런던 등의 지역에서는 일반 택시를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택시로 운행하고 있다.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잉글랜드 택시의 58%(2017년 기준)가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택시다. 영국 런던에 사는 이재하(27)씨는 “길을 다니다 보면 휠체어 사용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타고 다니는 버스는 모두 저상버스였다. 택시의 경우 내부가 굉장히 넓어 휠체어 통째로 승객 칸에 싣고 갈 수 있었다. 이씨는 “대중교통을 탈 때 보통 승객들이 많이 도와준다”며 “장애인을 향한 양보가 훨씬 선진화돼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모든 이동엔 비용이 따르는 법

휠체어 사용자들은 이동은 결국 생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장애인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동 수단에 제약이 있는 건 발을 묶는 거예요. 아예 집 안에만 있으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죠.”(김경원씨·37)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어요. 퇴원한 직후에는 내 집 앞에만 간신히 나갔죠. ‘장콜’이나 저상버스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면 가고 싶은 곳을 편하게 가고,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질 거예요. 제 생활 반경을 넓히는 데 가장 중요하죠.”(김유현씨·26)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법적, 제도적으로 발전하려면 비장애인 중심 사고를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교통 시스템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지적이다.

조한진 교수는 자기 경험을 예시로 들었다. 당시 대구대는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해 모든 건물에 점자 블록을 깔아야 했다. 돈 낭비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제가 그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학교 올 때 돈이 얼마나 들었냐고요. 버스비 1,000여 원을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아뇨. 당신을 학교로 오게 하기 위해 아스팔트를 깔았고, 버스 기사를 고용했고, 버스를 샀습니다’라고 답했어요. 비장애인 위주의 사고를 깨야 해요.”

경일대 기계자동차학부 신재호 교수는 휠체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는 기술적으로 외국 사례를 충분히 반영했다”며 “개조 버스의 운행 횟수를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이용자들의 개선사항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2019년 11월 ‘휠체어 탑승 개조 버스의 안전도 연구’에 참여했다.

우리는 모두 ‘미(未)’ 장애인

2020년 기준 교통약자 인구는 전국의 약 30%. 고령화 시대 그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등록 장애인 가운데 88%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었다. 장애인으로 새로 등록되는 사람 중 3분의 2인 5만4,000명이 60세 이상이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어들고 뼈가 약해진다. 건강한 사람이더라도 노화가 오면 휠체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단 의미다. 이동권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

◆글 싣는 순서
① 휠체어가 지역을 넘나드는 법
② 장애인의 요구는 어떻게 무시돼왔나
③ 대중교통이란 무엇인가

이수빈·강지수·김수현·이수연(이화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