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우리 정부도 많이 노력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2022 장애인의 날 관련 SNS 글)
"저희도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 제392회 국토교통소위원회)
휠체어 이동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관련 시위를 할 때마다 정치인이 현장을 찾았다. "죄송하다"고 사과하거나 "국회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부도 "노력했다"거나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면 왜 장애인 시위의 요구사항은 20년째 그대로일까. 이유가 무엇일까.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처음 발의된 2005년부터 지금까지 국회가 장애인 이동 문제를 다뤄온 방식을 되짚어 보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이동 관련 예산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사항이 눈에 띈다. ①효율적 재정 운영을 중시하는 정부 ②법안을 끝없이 계류시키는 국회 ③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지자체.
취재팀은 교통약자법을 다룬 제17~21대 국회 기록을 살펴봤다. 의안 원문 132건과 의안의 검토보고서 115건, 국토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국토교통소위) 회의록 23개다.
국회는 법안을 효율 관점으로 따졌다. 2005년 9월 13일, 제256회 건설교통(현 국토교통) 소위에선 권영세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검토 보고했다. 교통약자법 시행 이후 첫 개정안 발의였다. 당시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 “KTX 휠체어 이용석의 경우 2005년 1월 1일~6월 30일 열차당 이용 인원이 0.1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용실적이 저조함"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교통약자에게 보다 많은 편의는 제공할 수 있으나, 이용 수요에 비해 과도한 전용 구역으로 인한 비효율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장경수 의원은 “이용률이 저조하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 자체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 전국 장애인 인구는 약 214만 명. 지역사회와 사회복지시설에 거주하는 인구를 추산한 수치다. 당시 총인구는 4,680만 명. 장애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5%에 다다를 때였다.
10년 후에도 여전했다. “교통약자에 대한 부분은 결국 비용 문제인데요. 수요가 많으면 비용이 덜 들어가는데 이거는 좀 시기상조⋯.” 19대 국회 회기였던 2015년 4월 29일 소위 회의장에서 김경식 당시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경제성을 따졌다. 이날은 이찬열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법 일부개정안을 다뤘다.
20대 국회 들어서도 ‘효율의 법칙’은 여전했다. 애써 만들어놨는데, 이용률이 낮으면 곤란하단 거다. 2017년 12월 14일, 제355회 국토교통소위에서 박맹우 의원은 ‘시설 낭비’라는 단어를 두 번 반복했다. “시설 낭비를 막아야 합니다. (중략) 교통약자 이동의 명분에만 사로잡혀서 무조건 강제화한다면 굉장한 시설 낭비가 우려됩니다.”
회의 참여 인원 모두가 효율의 법칙을 외친 건 아니다. 장애인 이동 문제를 경제성 논리로 접근하는 시각을 우려하는 의원도 있었다. 작년 12월 22일 제392회 소위에서 김윤덕 의원은 일부 의원의 태도를 보고 “교통약자법의 정신을 생각하면 국가에서 돈을 줘서라도 제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은 시종일관 재정을 걱정했다. “그게 재정 당국의 입장입니다. 운영비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건데,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처 간 이견이 있을 경우 법이 법사위에서 바로 통과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염려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날 전문위원은 일부 국회의원으로부터 “전문위원님이 꼭 기획재정부 장관 같아요"란 말을 들었다.
이런 인식 아래 장애인 이동 문제 관련 교통약자법 절반이 사라졌다. 취재팀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서 17~21대까지 발의된 법안 132건의 의안 원문을 살폈다.
눈에 띄는 단어는 '임기만료폐기'다. 교통약자법을 검색하면 17대부터 20대까지 발의된 법안 94건 중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이 53건이다.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19개 중 11개(2022년 5월 14일 기준)는 국회 상임위원회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1년 넘게 흘렀다.
문제는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이 재발의되고, 똑같은 절차로 폐기된다는 점. 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 운영 관련 주체를 국토교통부령에서 대통령령으로 바꾸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20대 국회 회기인 2018년 3월, 5월에 김명연 의원과 박경미 의원이 유사한 내용을 두 차례 발의했으나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임기 막바지에 발의된 법안도 아니었다. 20대에서 발의된 법안 2건도 약 2년 계류했다. 교통약자법 16조 1항에 의하면 특별교통수단 운영은 아직도 대통령령이 아닌 국토교통부령에 따른다.
0원. 경주시가 작년 '특별교통수단 구입 지원' 사업 명목으로 지출한 금액이다. 사업 예산에서 단 1원도 쓰지 않았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경주시는 국비 4,600만 원을 포함해 총 9,200만 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장애인 콜택시 2대를 추가로 살 수 있는 값이다. 경주시는 장애인 콜택시 19대를 운행하고 있다. 휠체어 사용자 221명당 1대 수준(2021년 10월 기준)인데 법적 권고 대수는 150명당 1대다.
취재팀은 지자체별 특별교통수단 예산 사용 내역을 보고자 161개 지자체 세부사업별 세출 현황(2021년 12월 31일 기준)을 살펴봤다. 특별교통수단은 기차역, 터미널 등에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휠체어 사용자가 비교적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별교통수단을 타면 관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이동’, ‘특별교통’, ‘장애인’ 등 키워드를 검색해 특별교통수단 관련 예산 현액과 지출액, 집행잔액을 파악했다. 예산의 집행 상황을 확인해 예산편성의 적절성과 집행의 효율성을 알아보고자 했다.
특별교통수단 도입 및 운영 예산을 아예 쓰지 않은 지자체는 7곳이었다. 이 중 4곳의 법정 권고 대수 대비 보급률이 전국 평균(83.4%, 2020년 12월 기준) 이하였다. 예산이 많이 편성된 지자체는 경주시(9,200만 원), 상주시(4,600만 원), 거창군(3,900만 원), 삼척시(1,000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세종시, 춘천시, 순천시 등 지자체 20곳에서 계획한 사업 24개는 편성 예산의 10분의 1 이상이 남았다. 집행 잔액이 예산 총액 대비 10% 이상이면 청문회에서 그 이유를 묻곤 한다.
여주시는 ‘특별교통수단 운영 지원’으로 예산 2,300만 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사용한 금액은 400만 원. 편성한 예산의 82%를 남겼다. 어떤 이유로 예산을 사용하고 남겼는지도 명시하지 않았다. 같은 맥락의 사업인 ‘특별교통수단 운영’ 또한 예산의 30%를 사용하지 않았다.
삼척시 특수교통수단 보급률은 50%로 매우 낮다. 작년 관련 사업 2개에 예산을 편성했는데, 각각 집행액의 100%, 45.2%가 남았다.
◆글 싣는 순서
① 휠체어가 지역을 넘나드는 법
② 장애인의 요구는 어떻게 무시돼 왔나
③ 대중교통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