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다. 국내 유입 소식을 처음 확인한 지 이틀 만인 14일, 발열 환자가 50만명을 훌쩍 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건국 이래의 대동란"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대응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고도 고백했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내부 경각심을 높이는 동시에 중국 등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은 일단 가용 자원을 방역에 '총동원'한 상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이하 사령부)는 이날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정치국 협의회에서 코로나19 현황을 보고했다. 보고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4월 말부터 5월 13일까지 발열 환자는 52만4,400여명. 이 중 28만810여명은 여전히 치료 중. 누적 사망자 수 27명."
문제는 확산세다. 보고에 따르면 13일 하루 동안 발생한 확진자가 17만4,400명 규모다. 같은 날 21명이 사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신형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전파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 악성 전염병의 전파가 건국 이래의 '대동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란'은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진다'는 뜻이다.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는 표현엔 그만큼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이 위기감을 굳이 숨기지 않은 것이다.
방역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도 북한은 털어놨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가 직면한 보건 위기는 방역 사업에서의 당 조직들의 무능과 무책임, 무역할에도 기인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유입과 확산 책임을 당 조직에 전가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사령부가 사망자 발생과 관련해 보고한 내용은 이렇다. "과학적인 치료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약물 과다복용을 비롯한 과실로 하여 인명피해가 초래됐다." '치료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한 건 이례적이다.
전날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과 '스텔스 오미크론 변이'를 구분하던 북한이 이날은 '발열 환자'라는 표현과 '코로나19 확진자'를 사실상 동의어로 사용한 것도, 북한의 방역 체계 미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환자 분류 방법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발열 환자를 코로나19 확진자로 분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방역 총력전'에 돌입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확진자 치료 방안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현 상황을 "지역 간 통제 불능한 전파가 아니라 봉쇄 지역과 해당 단위 내에서의 전파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각급 비상방역 단위들에서 자기 지역, 자기 단위의 방역 사업에 대한 작전과 지휘를 보다 치밀하게 하여 전염병 확산 추이를 반드시 역전시켜야 한다"고 지시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 간 이동 차단 등 조치를 동원할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의약품의 신속한 공급을 위한 방안도 북한은 마련 중인 듯하다. 통신은 "(정치국 회의에서) 최대 비상방역체계의 요구에 맞게 긴급 해제하는 예비의약품을 신속히 보급하기 위한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고 소개했다. 북한 보건성은 긴급협의회를 열어 비축해둔 의약품을 병원 및 약국에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약국을 새로 연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국의 의료진은 물론, 의학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코로나19 방역에 동원됐다. 통신은 "한 명의 유열(발열)자도 놓치지 않게 빠짐없이 찾아내며 치료사업을 신속히 과학적으로 따라 세우는 데 주되는 힘을 넣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방역 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선전 사업을 강화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보건위기 상황을 신속히 타개하기 위하여서는 전체 인민의 과학적인 방역의식 제고가 중요하다"며 "해당 부문들에서 광범한 대중에게 전염병 방지와 치료에 필요한 상식 선전사업을 짜고 드는 것과 함께 대중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한 편집물들을 많이 만들어 대중 보도수단들을 통하여 널리 보급하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고 고백한 데에는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다'는 뜻이 함축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당과 인민이 악성 전염병과의 투쟁에서 이미 거둔 선진적이며 풍부한 방역 성과와 경험을 적극 따라 배우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에게 코로나19 백신 등을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손을 내밀면, 중국이 이를 잡아줄 가능성은 크다. 앞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방역과 백신 영역에서 북한과 협력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동지이자 이웃나라, 친구로서 중국은 북한의 방역을 수시로, 전폭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이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강인선 대변인을 통해 알렸다. 미국 국무부도 13일(현지시간)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 및 억제하고, 북한의 취약계층에 대해 다른 형태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려는 미국과 국제 구호·보건기구들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장려한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이 화답할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