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힘들게 고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 중 친부모 찾기에 성공하는 비율은 1% 미만이다. 가족 찾기의 단초가 될 출생 및 입양 기록을 남겨 놓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탓이다. 그마저 있던 기록도 해외 입양의 편의를 위해 입양기관이 지워버린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입양인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해 출생 사실을 행정기관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진작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뒤처져 있다.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5년부터 올해 5월까지 보건복지부에 접수된 해외 입양인 부모 찾기 신청 9,022건 중 절반에 가까운 비율(41.4%·3,734건)이 입양서류 등 관련 기록이 일절 남아있지 않은 ‘정보 미비’(27%·2,438건) 상태이거나 ‘기아(棄兒·버려진 아이)’로만 기록된 경우였다.
입양 관련 기록이 남아 있더라도 입양인이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현행법상 입양서류는 입양기관 소유여서 해당 기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입양 당사자라도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입양기관이 친부모에 대한 인적 사항을 남겨놓았더라도 친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입양인이 알 길은 없다. 아동의 권리보다는 부모의 권리를 우선시 해 온 탓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해외 입양인들과 입양 관련 단체 등은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친부모를 찾기 위해 국내를 찾는 해외 입양아들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출생통보제 도입을 통해 미등록 아동들에 대한 문제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서는 임산부 신원과 관련한 정보 공개를 오히려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례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보호출산제' 법안의 경우 아동이 성년에 도달해도 친부모 동의가 있어야만 출생증명서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입양인 단체 등은 정치권의 이 같은 논의가 아동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어긋나는 데다 오히려 친부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필식 입양연대회의 사무처장은 "보호라는 이름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아이와 친생부모 모두를 보호하는 법안이 아니다"며 "아이를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친생부모가 충분히 상담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보듬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출생통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앞선 3월 법무부는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은 관할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게 하는 내용이 담긴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출생통보제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아기가 병원에서 출생한 경우 병원 등록시스템을 통해 의료보장 번호가 발급되도록 하고 있고, 캐나다와 독일 역시 의사와 부모 모두에게 출생통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첫걸음"이라며 "미등록된 채 살아온 아이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