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위탁 지점장’은 근로자?… 대법 “사안마다 달라” 엇갈린 판결

입력
2022.05.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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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 심리 6건 중 2건 대해 "근로자 인정" 첫 판단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 다른 4건은 불인정

보험사와 영업 위탁계약을 맺은 지점장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위탁계약형 지점장 관련 소송 사건 6건을 동시에 심리한 대법원은 그러나 이 가운데 4건에 대해선 구체적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14일 한화생명보험과 위탁계약을 맺은 지점장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회사가 규정 위반을 이유로 위탁계약을 해지하자 부당 해고라며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냈다. 그러나 중앙노동위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심 신청까지 각하하자, A씨는 법원에 중노위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법적 근로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지휘·감독 아래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자인데 A씨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가 보험사의 취업 규칙과 인사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는 점이 판단의 핵심 근거였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의 업무시간이 정규직 지점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 △A씨가 보험사 지역본부가 관리하는 지역단에 업무보고를 해온 점 △A씨가 운영하는 지점에 보험사 정규직 직원이 배치된 점을 들어 A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도 같은 날 농협생명보험의 위탁계약형 지점장 B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며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와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같은 날 심리한 다른 4건에 대해선 위탁계약 지점장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과 흥국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었다.

재판부는 각 보험사가 이들 위탁계약 지점장에게 업무 계획이나 실적 목표 등을 알리긴 했지만, 업무를 일일이 지휘·감독하진 않았다고 봤다. 일부 지점장들은 소속 설계사의 해촉으로 발생한 수수료를 환수당한 점을 감안할 때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된 사업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도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근로자성 판단 대상이 모두 보험회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으로 같다고 해도 개별 사건에서 업무 형태 등 구체적 사실관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에 기존 판례에 따라 서로 다른 판결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번 6개 사건 판결에서 △본사의 위탁계약형 지점장 관리 방식 및 정도가 업무 수행에 관한 상당한 지휘·감독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지점장이 근무시간 등을 구속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본인 계산으로 지점 운영비를 투입하거나 사업상 위험을 부담했는지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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