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비드가 승인받기까지...

입력
2022.05.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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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에노비드

1960년 5월 9일 미 식품의약국(FDA)이 경구피임약 '에노비드(Enovid)'를 승인했다. 당시 한 여성 저널리스트(Clare Boothe Luce)는 "여성이 비로소, 남성들이 몸으로 누려온 만큼의 자유(불임)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 약이 여성 산아제한 운동가 마거릿 생어(1879~1966)가 내분비학자 그레고리 굿윈 핀커스(1903~1967)를 설득한 지 약 10년 만에 이룬 결실이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인과 의사 존 록(John C. Rock, 1890~1984)의 노고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에노비드는 앞서 1957년 생리불순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제약사(G.D Searle)는 1959년 10월 에노비드의 경구피임약 승인을 신청했다. 안전성 검증을 위해 여성 897명을 대상으로 에노비드 1만427세트를 복용케 하는 임상시험이 전개됐다. 유해성을 우려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FDA는 한 달여간 일언반구 없이 승인 절차를 지연시켰다. FDA가 두려워한 것은 여론이었다. 치료 목적이 아닌 건강한 여성을 위한 사회적 목적의 약을 승인한 전례도 없었다.

핀커스와 함께 에노비드 개발에 참여했던 당시 만 70세의 록은 제약사 담당자와 함께 1959년 12월 워싱턴D.C.행 기차에 올랐다. 한 시간 반가량 추운 빌딩 현관에서 기다린 끝에 그들은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갓 의대를 졸업한, 의사 면허도 없던 만 30세 담당자(Pasquale DeFelice)는 에노비드의 장기적 부작용, 예컨대 암 발병 가능성과 함께 경구 피임약의 종교적·윤리적 문제점을 피력했다. 분노한 록은 "나는 평생 여성 암환자를 돌봐 왔는데 '젊은이' 당신은 경력이 얼마나 되냐"고 따졌다. 그들의 거듭된 탄원과 투쟁 끝에 비로소 청문회가 열렸고, FDA는 피험자들의 만 2년 부작용 추적 조사를 거친 뒤에야 '경구피임약 에노비드'를 승인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