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시영주택과 평화기념관... 재일 조선인 ‘우토로마을’의 변신

입력
2022.05.01 22:00
[본보 취재- 日교토 인근 ‘우토로마을’ 가보니]
일제강점기 조선인 마을, 기념관으로 재탄생

일본 교토역에서 긴테츠교토센 열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작고 낡은 이세다역이 나온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이세다초 51번지, 바로 우토로마을이다.

마을회관 ‘에루화’가 곧 눈에 띈다. 1946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제초등학원’을 건립해 3년 후 폐쇄령이 내려지기까지 우리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쳤던 곳이다. 이후에도 우토로마을을 지키려는 투쟁의 근거지이자 차별로 인해 주변과 고립돼 살아 가던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 왔다. 앞으로는 지난달 30일 문을 연 ‘우토로 평화기념관’ 1층에 마련된 카페가 주민 간 교류센터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73년간 우토로마을에서 거주한 한금봉(83)씨는 코로나19로 막힌 한일 양국 관광이 재개되면 기념관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에루화 인근에는 아직도 주민 12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내년 중반쯤 완공될 2기 시영주택에 입주한다. 2018년 완공된 1기 시영주택에는 40가구가 이주를 완료했다. 애초 우지시는 우토로마을 주민과 일본 시민단체의 거주환경 개선 요구와 ‘마을 만들기’ 요청에 소극적이었다. 1989년 강제 퇴거를 명한 일본 기업이 2000년 최고재판소(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승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께 우토로마을의 사정을 알게 된 한국 정부가 30억 원을 내고 한일 시민들도 17억 원가량을 모아 토지를 구입하자, 이 자리에 시영주택을 짓기로 했다. 1기 시영주택과 2기 시영주택 공사현장, 그리고 새로 지은 우토로 평화기념관과 모서리의 작은 공원이 깨끗하고 말끔해, 과거 열악했던 마을의 참상을 연상하긴 어렵다.

한일 시민들이 기념관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이런 이유에서다. 내년 2기 시영주택이 완공돼 남아 있는 12가구마저 입주하면 에루화와 인근에 남은 우토로마을 주택은 모두 헐리게 된다. 마을의 ‘변신’이 거주 환경을 개선시키겠지만, 역사의 흔적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로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 것이다.

기념관 2층에선 강제 퇴거 위기를 맞은 주민들이 함께 드러누워 시위를 하던 모습, 우물에서 물을 긷던 여성, 그러면서도 함께 사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도 볼 수 있다. 1980년대까지도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사용했던 펌프, 퇴거 명령을 받았을 당시 송달된 두툼한 소장도 놓여 있다. ‘함바’로 불린 오래된 건물은 지난해 해체해 기념관 앞마당에 세워 놓았다.


다가와 아키코 관장은 개관식에서 기념관을 “평화를 기리는 공간으로, 젊은 세대가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1980년대부터 우토로 마을에 수도가 없어 생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민과 함께 투쟁해 온 일본인이다.


우토로마을의 조선인들은 일제강점기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된 1,300명 중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이들이다. 공사장 인근에 판잣집을 짓고 살던 이들은 수도가 없어 우물물을 마시고 큰 비가 오면 침수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극심한 차별과 빈곤에 시달렸다. 일부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 1988년 상수도 공사가 시작됐으나, 다음 해 갑작스러운 퇴거 명령을 받았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한일 시민들의 투쟁은 시영주택 건립과 평화기념관 개관으로 조금이나마 결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우토로에 대한 차별이 끝난 건 아니다. 에루화 인근엔 지난해 여름 ‘한국인이 싫다’며 일본인이 불을 질러 까맣게 타 버린 집이 남아 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흔적을 보는 주민들은 “아직도 무섭다”고 말했다. 우토로마을에서 태어난 강도자(73)씨는 기념식에 참석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조선인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별했고 지금도 계속된다”며 “평온하게 살게 된 것은 정말로 최근의 일”이라고 말했다.

2016년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된 후 명시적인 증오 발언은 줄었지만, 인터넷에는 우토로마을 험담이나 재일코리안(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익 단체의 가두 연설도 일본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주오사카총영사관 관계자는 “기념식 전후로 우지시와 경찰 측에 순시 강화 등 대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재일동포 지원 활동을 하는 비영리법인 코리아NGO센터 곽진웅 대표는 “다음 달 방화범의 재판이 시작되는데, 이를 계기로 교토부에서도 헤이트 스피치 금지 조례가 제정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념식에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우지시의 시장은 방화 등 증오범죄 대책을 묻는 일본 매체의 질문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까지 재일동포 차별에 대한 소송 등은 주로 일본 시민단체가 지원해 왔다. 우토로마을의 성과를 교훈 삼아, 한국에서도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 시정 운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토로=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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