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다음 달 9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종료에 맞춰 사의를 표명했다. 이 회장이 5년 가까운 임기 동안 진두지휘한 조선업 등 산업 구조조정은 대부분 결실을 내진 못했다. 하지만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구조조정 칼잡이로 나선 이 회장의 시도 자체는 의미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은은 28일 이 회장이 금융위원회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 산은 회장으로 부임해 연임에 성공한 이 회장은 임기를 1년 5개월 남겨두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도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진보정권이 중용했던 이 회장이 물러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권 최측근이 금융 공기업 중 맏형 격인 산은 수장을 맡는 점도 이 회장 사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임기 4년 7개월 동안 추진한 산업 구조조정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는 산은을 이끌면서 대우건설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대한항공과 합병한 아시아나항공도 미국 등 경쟁당국 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아직까진 순항하고 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이 회장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그가 주도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M&A는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올해 1월 결합을 불허하면서 결국 불발됐다. 이에 따라 침체에 빠진 조선업을 되살리기 위한 구조조정은 미뤄졌다. 쌍용자동차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다만 이 회장이 노동조합, 지역 주민 등 여러 이해당사자 반발이 거센 산업 구조조정에 적극 나선 모습에는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유망 벤처기업 투자를 이끌어낸 점도 이 회장의 성과로 인정받는다. 이 회장은 산은이 2016년부터 벤처기업과 투자자를 이어주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KDB 넥스트라운드'를 키워 5년간 3조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 의류업체 브랜디는 이 행사로 투자금을 확보해 규모를 키운 대표 기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 사퇴로 그가 추진하던 산업계 구조조정 작업도 동력을 잃을 전망"이라며 "조선업 구조조정, 쌍용차 매각 등의 마무리는 결국 새 정부가 임명할 차기 산업은행장에게 숙제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