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라는 분석에 걸맞게 북한이 25일 연 심야 열병식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각종 미사일을 총동원했다.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부터 소형화된 전술핵무기를 탑재해 수도권을 위협할 신형 전술유도무기까지 망라하며 핵 위협을 노골화했다는 평가다. 기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보다 더 길어진 ‘신형 SLBM’도 포착됐다.
26일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 사진을 공개했는데, 특히 신형 SLBM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월 8차 노동당 대회 기념 열병식 때 처음 등장한 북극성-5형에 비해 길이가 다소 늘었다. 현재 신포조선소에서 건조되는 3,000톤급 잠수함에 탑재하기 위한 용도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레일러 앞부분에 최소 0.5m 이상 돌출한 걸 보면 탄두부 혹은 추진부 길이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탄두부가 길어졌다면 다탄두를 장착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다탄두 기술 향상은 ICBM에 탄두 장착이 그만큼 수월해졌다는 뜻도 된다.
이날 열병식은 새로운 무기체계를 선보이기보다 최근 쏘아 올린 미사일을 전부 집결 시킨 것이 특징이다. 화성-17형을 필두로 대남 타격용 초대형 방사포(KN-25),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북한판 에이태큼스 KN-24에 이어 16일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무기까지. 올 들어 열 두 차례나 시험발사에 나섰던 무기들이 크기와 종류에 상관 없이 다시 등판했다. 실전배치 능력을 거듭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가장 부각한 무기는 화성-17형이다. 신문은 “3월 24일, 주체 조선의 절대적 힘을 온 세상에 과시하며 만리 대공으로 치솟아 오른 화성포-17형의 어마어마한 모습에 온 광장이 환희와 격정의 도가니로 화했다”고 전했다.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화성-17형은 길이가 22~24m로 기존 화성-15형(21m)보다 늘었다. 현존하는 ICBM 중 가장 길고 다탄두(MIRV) 형상을 지녀 괴물 ICBM이란 별칭이 붙었다.
북한은 올 들어 세 차례 화성-17형의 성능을 점검했는데, 지난달 16일 발사는 공중에서 폭발해 실패했다. 이후 북한은 지난달 24일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한미 정보당국은 여드레 전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화성-15형을 쏘고 사진을 조작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북한 매체가 화성-17형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한미의 분석은 틀렸고, 3월 24일 쏜 발사체가 이 미사일이 맞는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지난해 9월 처음 쏘아 올린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과 한 달 뒤 잠수함에서 수중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미니 SLBM’도 등장했는데 각각 탄두부가 길어지거나 더 뾰족해졌다.
북한이 이날 열병식에서 뽐낸 미사일들은 상당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핵 투발 수단’이다. 특히 북한은 가장 최근인 16일 신형전술유도무기를 시험발사하면서 크기를 작게 한 ‘전술핵’ 운용 능력까지 내보였다. 이날 열병식에서 “핵무력을 강화ㆍ발전 조치를 계속 취해나가겠다”고 공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심이 열병식 전시 무기에 녹아 있는 셈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핵무기는 물론, 이를 옮기는 데 필요한 탄도ㆍ순항미사일 등의 운반체도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