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이 1분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절반을 쓸어 담으며 중국을 제치고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수주 실적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지만 정작 조선업계에선 적잖은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2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들어 컨테이너선 64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2척 등 총 85척, 97억4,000만 달러를 수주해 연간 수주목표인 174억 달러의 56%를 달성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올해 46억1,000만 달러(20척) 상당의 일감을 확보해 연간 목표치(89억 달러)의 52%를 채웠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목표 88억 달러의 23%(20억 달러)를 수주했다.
국내 대형 3사가 연초부터 굵직한 수주를 잇따라 따낸 덕분에 한국 조선업계는 7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1분기 글로벌 수주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나란히 1조 원대 적자를 낸 조선 3사가 내년 흑자전환을 호언한 배경이다. 이미 2년치 일감을 확보한 만큼 큰 변수가 없는 한 실적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 이런 장밋빛 전망을 뒤흔드는 위기 징후가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선 수주 업황이 단기 고점을 찍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선박 수주 사이클은 3, 4년 주기로 움직이는데 글로벌 조선사의 월간 선박 수주잔고 추이를 보면 연초 정점을 찍은 후 하락 전환했다"며 "하락세가 이제 시작돼 선박 수주를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실제 1분기 전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규모는 1년 전보다 41% 급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빚어진 대규모 물류 차질로 급등했던 해상운임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 것도 불안요인이다. 해운 수요가 줄면 선박 수요도 덩달아 줄기 때문이다. 선박 수요가 줄면 뱃값 역시 하락할 여지가 커져 조선사로선 원가 상승 부담에 더 취약해진다. 원재룟값 상승분을 바로 제품가에 반영하는 자동차 산업과 달리 조선업은 선주에게 배를 인도하는 데 2년 넘게 걸려 계약서를 쓴 후엔 원재룟값이 아무리 올라도 뱃값을 올려받지 못한다.
이처럼 수주 업황이 단기 고점을 찍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선박 주재료인 후판값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가 인상이 유력해지면서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일감을 대거 따놓은 상황에서 후판값이 뛰면 그만큼 손실충당금 규모도 커진다. 이는 흑자전환이 절실한 조선사들에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지난해 후판값은 전년보다 배 이상 오른 톤당 110만~120만 원으로 정해졌는데, 올 상반기엔 5~10% 수준의 인상이 이뤄질 걸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산 후판 수입이 막혀 국내산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연초만 해도 동결을 예상하고 선주와 계약을 했었는데 후판값이 인상되면 앞서 수주한 물량 대부분에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며 "이 영향으로 분기 흑자를 거둘 수 있는 시점이 뒤로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후 후판값이 떨어지면 충당금 환입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게 불안요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