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주제로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해진다. 음악가를 만나도 마찬가지다. 연주 프로그램보다 일상 속 마음 가는 음악 얘기가 훨씬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알아가는 재미가 좋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그렇게 알아가고 있다. 그의 음악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읽으면서다. 소문난 음악애호가인 하루키는 소설 속에 재즈, 록, 팝,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등장시켰다. 그 음악만 묶어낸 음반과 책, 기획 콘서트가 모두 잘 팔릴 만큼 음악계에서도 영향력이 컸으니, 하루키의 플레이리스트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음반 마니아들이라면 책장을 펼치자마자 바로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과 같은 명곡, 명반 입문서가 아니다. 의외다 싶은 작품이 등장하고, 왜 빠졌을까 싶은 곡목이 보인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2번, 3번이 아닌, 트리포노프가 ‘숨은 보석’이라고 했던 4번에 대해 얘기하고, 지휘자 카라얀이나 토스카니니보다는 스토코프스키, 프리 차이, ‘젊은 날의’ 로린 마젤을 좋아한다고 굳이 밝힌 지점도 재밌다. 소설에서 언급했던 음악은 '해변의 카프카'에 소개됐던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만 등장한다. 스트라빈스키나 버르토크, 쇼스타코비치 작품이 꽤 많고 브루크너나 베르디는 아예 없다.
좋아하는 것만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R.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앨범 다섯 장을 올려놓고,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조지 셀의 조합이면 충분한데, 그 사실 확인을 위해 마음을 파고들지 않은 리자 델라 카자·칼 뵘, 훌륭하지만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군돌라 야노비츠·카라얀 앨범을 들어왔던 것 같다고 말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은 페이지를 좀 더 할애했는데, ‘자신의 음악관을 바꿔놓았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의 이 곡 해석은 좋지 않다’는 내용도 있다. 읽다보면 계속 웃음이 나온다. 위스키 한 잔 마시면서 저 음악이 왜 좋은지, 이 음반은 뭐가 맘에 들지 않은지 혼자 구시렁거리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은 사람과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단하고 결론 내리는 것과 늘 거리를 둔다고 했다. 번역을 좋아하는 이유도 작품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머물지 않고 통과하기 때문이고, 집단이나 학파, 문학 분파에 속하기보다 혼자이길 좋아하고, 익명으로 지낼 곳을 찾아 거주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에 모든 것을 활짝 열어두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지 자기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음악감상 글에도 일관성 있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 점이 참 좋다.
하루키의 에세이에 독자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신체의 강인함이 예술적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다며 강조해온 달리기 예찬은 글문이 막힌 수많은 작가들을 뛰게 만들었고, 위스키 성지를 찾아다닌 여행기 때문에 지인 4명은 몇 해 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까지 다녀왔다.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의 인터뷰집과 직업 소설가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현실에 대한 고찰은 인내하고 꿈을 좇으며 일상을 스스로 정비해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구체적인 응원이 되었다.
다른 에세이들처럼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도 누군가를 움직이게(음악을 듣게) 하면 좋겠다. 물론 책에 소개된 연주자의 대부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앨범은 주로 50~60년대 녹음된 것으로 LP는커녕 CD 구입도 쉽지 않다. 음악 이야기로 잔뜩 설레게 만들어놓고 정작 그 음악은 찾아 듣기 어렵다. 하지만 길은 있다. 고맙게도 유니버설 뮤직에서 하루키 책에 언급된 음원들을 유튜브에 올려놨다. 귀에 꽂히는 음악을 만나게 되면 같은 작품의 다른 연주자의 것을 찾아 들으며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자. 하루키가 오래된 레코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판을 닦거나 오디오 장비를 정비할수록 음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애정을 갖고 대하면 그만한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정을 보일 때 반응이 따라오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 심장이 뛰고 땀이 나봐야 ‘러너스하이’를 알게 되듯이, 애호가들만의 ‘도취감’은 스스로 시간과 발품을 팔았을 때에만 얻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