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언급' 바이든의 레토릭은 돈바스를 지킬 수 있을까

입력
2022.04.14 18:37
“제노사이드(집단학살)” , "우크라이나 말살 시도"
대량학살방지협약 따라 국제사회 대응 뒤따라야 
군사행동 않으면서 스스로 협상카드 버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향한 러시아군의 총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을 ‘집단학살(Genocideㆍ제노사이드)’이라고 규정, 연일 러시아를 향한 비판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러시아군의 잔혹행위를 국제사회에 각인시켜 서방의 결집을 꾀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러시아를 자극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아이오와주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이 우크라이나인의 사상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점점 분명해지기 때문에 난 이를 제노사이드라고 부른다”며 “그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를 향해 제노사이드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외곽도시 부차 등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전쟁범죄’라고 했던 것에서 훨씬 강도 높은 비난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부차 학살 등을 비판하면서도 “집단학살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끔찍한 전쟁"이라거나 "전쟁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는 등 제노사이드보다는 낮은 수위로 비판했다.

제노사이드는 공동체를 파괴할 목적으로 특정 민족 집단이나 국가에서 온 다수의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을 포함해 1948년 유엔 대량학살방지협약에 서명한 국가들은 이를 ‘예방하고 처벌할 의무’가 있다. 국제사회의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정치ㆍ외교ㆍ법ㆍ도덕적 무게가 가볍지 않은 표현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군대나 미군의 참전 가능성이 열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를 향한 비난 수위를 높이는 것이 러시아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유도하려는 의미가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그의 강해지는 레토릭(수사)이 되레 사태 해결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실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러시아와 서방의 물밑 협상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군사행동으로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외교를 통하는 수밖에 없는데도, 그 기회를 말 한마디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우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집단학살 혐의를 씌워 법정에 세우려는 서방과 대화할 리는 만무하다. WP가 “(바이든 대통령이) 자주 감정적 반응을 표출하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에서 일탈하고 동맹국과의 파트너십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은 형제 같은 사이이므로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쓰는 데 주의해야 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우회 비판했다. AF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 비난의 최고사령관이 됐다”고 비꼬았다.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