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여는 것을 좋아한다. 창문 바깥에는 몇 개의 화분이 쪼로록 놓여 있고 연둣빛 새 잎이 돋아나고 그런 것을 알아보며 기뻐하고 싶다. 햇빛이 방 안 깊숙히 들어와 네모난 백색을 만드는 시간에 청소기를 들고 먼지를 없애는 걸 좋아한다.'
앨범의 첫 두 트랙은 노래가 아닌 산문 낭독이다. 음악 앨범이 아닌 오디오북인가 싶지만 10분쯤 지나면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노래가 등장한다. 시인과 가수는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다 타이틀 곡인 '축제'에 이르러 합쳐진 뒤 다시 각자의 이야기를 전하고 끝을 맺는다.
김소연 시인과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의 합작 앨범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의 독특한 시도는 지난해 11월 라이브 녹음으로 첫선을 보인 뒤 최근 스튜디오 버전으로 다시 녹음돼 음원으로 공개됐다. 두 사람의 협업은 이달 초 책으로도 출간됐고 라이브 앨범에만 담겼던 영상 또한 지난달 유튜브에 공개됐다. 이들은 음악과 책, 영상이 합쳐졌다는 뜻으로 '뮤키디오(Muookideo·Music+Book+Video)'라고 정의했다.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는 최고은이 만든 단어인 '우정스러움(Friendhood)'에 관한 앨범이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최고은은 "우정을 오래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연 언니에게 부탁을 했다"고 앨범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정확히는 우정이라기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로 대하면 좋을까를 담은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우정을 모를 리가 없는데 그렇게 말할 때 얼굴이 좋았어요. 얼마나 생각했으면 '모른다'는 말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하겠다고 했죠. '우정스러움'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우정이라는 것의 고정관념 밖에 있는 것들, 희석된 우정이나 일회적 우정까지도 다 포함하고 싶어서 그런 표현을 쓴 것 아닐까 싶어요. 수적으로 보면 미지근한 관계가 훨씬 많잖아요. 광범위한 관계이기 때문에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귀중하지 않아서 남들은 못 보는 영역을 고은씨가 챙긴 느낌이 들더군요."(김소연)
시인은 일기를 쓰듯 틈틈이 써둔 산문을 가수에게 전달했고 가수는 자신이 만들어둔 곡과 맞는 글을 골라 연결시켰다. 산문 속 화자는 책으로 얼굴을 덮고 공원 벤치에 누웠다가 자전거를 타고 안경점에 다녀온 일상을 담담히 전한다. 친구와 캠핑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일상은 곧 미지근한 축제가 된다.
라이브 녹음은 최고은의 집에서 했다. "지난해 6월에 촬영과 녹음을 했는데 하루에 다 마쳐야 해서 카메라 세팅에만 70% 정도 시간을 쓴 것 같아요. 노래와 여러 악기의 녹음도 모두 한번에 해야 했죠. 당시엔 노래들이 아직 제 몸에 안 붙어 있었고 그 사이 노래가 조금 달라진 것도 있어서 스튜디오에서 다시 녹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최고은)
두 사람은 앨범을 내고 몇 차례 소규모 공연도 했다. 가수에겐 일상적인 일이지만 시인에겐 낯선 경험이었다. "이상하고 신비한 경험이었어요. 작은 서점에서 할 땐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반응을 볼 수 있었죠. 맨 앞줄에 앉아 계신 분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요. 북토크와는 많이 달랐어요. 관능적이고 천진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사람은 10여 년 전 문화계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처음 만나 서로 교감하는 사이가 됐다. 최고은은 김소연의 말투가 특히 좋다고 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목소리 톤과 발음"이라며 "누군가는 어눌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굉장히 매력 있는 목소리"라고 치켜세웠다.
앨범을 듣고 나면 음악은 산문으로 기억되고 산문은 음악으로 기억되는 묘한 잔상을 갖게 된다. 두 예술가의 협업은 다른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서로 각자의 작업이 있으니까요. 타이밍이 잘 맞으면 다시 하고 싶긴 하지만 무리하고 싶진 않아요."(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