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3주년을 하루 앞두고 관련 단체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효력을 잃었지만, 정부의 대체 입법 공백으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없다"며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이끌어온 시민단체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이하 셰어)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을 개최하고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는 시민 200여 명이 참가해 보신각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헌재 판결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여성들이 겪는 현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예림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는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피해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여전히 수술비 걱정을 하고,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의 후속 입법 미비를 원인으로 꼽았다. 2019년 4월 11일 헌재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고, 이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효력을 잃었다. 처벌 규정은 사라졌지만 정부가 마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어 시술 비용도 제각각이고, 진료 거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보영 셰어 사무국장은 "입법 공백 때문에 여전히 임신중지 장벽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선 정부가 관련 시술이나 의약품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지불 능력에 따라 권리 행사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비용 장벽으로 임신중지 시기가 늦춰지면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활동가 졔졔 역시 "임신중지는 문란하고 비도덕적인 소수 여성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가임기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사건"이라며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속한 유산유도제 사용승인도 요구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유산유도제는 임신 초기에 사용하면 99%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다"며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중국이나 베트남, 심지어 북한도 사용하고 있다"고 승인을 촉구했다. 이들은 "식약처 허가가 지연돼 암암리에 인터넷으로 약품을 구매하고, 성분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