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장관 임명의 촌극

입력
2022.04.08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폐지될 여성가족부에 장관을 임명한다고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7일 밝혔다. 정부조직개편안은 지방선거 이후에나 나올 예정이다. “공약인데 (안 지키면) 거짓말한다는 건가”라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단언에 여가부 폐지를 못 박았던 인수위는 “더 이상 정부조직개편 논의는 없다”고 발을 뺐다.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이자니 지방선거와 국회 통과가 걱정스럽고, 언론의 조언대로 공약을 뒤집자니 이대남 눈치가 보일 터다. 시한부 장관을 뽑아놓고 부처를 없애는 이상한 장면이 됐다.

□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이 혼란의 원인은 애초에 여가부 폐지의 논리가 합당치 않아서다. 윤 당선인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지만 너무 많은 성차별 증거 앞에 동의하기 어렵다. 하태경 의원 등은 젠더 갈등 유발자라는 이유를 대는데 갈등을 낳은 게 여가부의 성평등 노력일까, 하 의원의 갈라치기일까. 권력형 성범죄에 잘못 대응한 장관의 과오도 지적되는데, 사람 잘못을 부처 폐지로 추궁한다면 남아날 부처가 없겠다. 성평등 정책을 너무 잘해서, 못 해서, 필요 없어서 부처 폐지가 결론이란다.

□ 국민의힘 선대위원장이었던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성차별이 자살률만큼 심각하지 않다”며 인구감소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남성을 권력자로 그리는 젠더 관점이 혼인·출산에 남성의 반감을 불러 저출산이 심화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여성에게 쏠린 육아의 현실은 어디 갔는지, 남성 육아휴직 같은 젠더 관점 정책이 정말 출산율을 떨어뜨렸는지 묻고 싶다. 자살률 급증에 성범죄·성차별의 영향을 분석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젠더를 지우고 인구를 내세우는 무지·오도는 저출생 완화조차 도움이 안 된다.

□ 어떤 부처든 개편을 논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7자 공약이 뒤틀린 선거전략에서 나왔기에 새 정부 출범부터 꼬이게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가 정직하게 답해야 할 질문은 ‘2022년 한국에 성평등 원칙은 불필요한가’이다. 그 밖의 쟁점들은 개선하면 될 일이다. 인수위가 떠넘긴 문제를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직시해야 한다. 여가부 폐지를 지지자 동원 수단으로 삼는 정치인, 무지·욕심에 사로잡힌 전문가에게 의지하지 말고 정직한 답을 내기 바란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