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한미동맹’이라는 자살골

입력
2022.04.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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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만 쳐다보는 ‘해바라기’ 외교 안보
백악관, 당선인 친서 든 특사 문전박대
윤 정부 출범도 하기 전에 ‘의문의 2패’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외교 안보정책이 자못 선명하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뚜렷한 색깔을 띠고 있다. 미국 대(對) 중국·러시아가 맞서는 신냉전 시대 도래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외교의 본질과 지향점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다.

방점은 ‘닥치고 한미동맹’ 올인에 찍힌다. 윤 당선인과 핵심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재인 정권의 외교 안보정책을 실패로 규정짓고, 한미동맹 정상화를 넘어 재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정상화하고 재건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다만 큰 틀에서 ‘모든 것을 뒤집겠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무엇보다 대북정책에서 ‘결기’에 가까운 대결 기류가 감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 진정성 있게 대응하려면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부터 되돌려 받아야 한다. 그러나 윤 당선인 주변에 전작권 조기 회수론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전작권 회수에 어깃장을 놓는 이들만 가득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주저앉히기 위해 여념이 없는 미국으로선 북한을 상대할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추가 핵실험을 한다 해도 이렇다 할 제재카드도 마땅찮다. 유엔은 더욱 무기력하다. 안보리는 중·러의 반대로 대북규탄 언론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현실적인 국제사회 힘의 구도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은 이런 기본 흐름조차 짐짓 외면한 채, 전작권이 없어 실현 불가능한 선제타격을 예사로 입에 올리며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의 ‘동맹 정상화’ 의욕에 정작 미국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윤 정부의 초대 외교장관 0순위로 꼽히는 박진 의원이 한미 정책협의대표단을 이끌고 백악관 문을 두드렸으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커녕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만나지 못했다. 러·우크라전 대응에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당선인 친서를 들고 온 특사가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게 바로 외교 참사이자 망신이다. 그뿐만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미국은 그동안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한다는 이유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 대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 왔다. 하지만 박 의원은 미국에 CVID 용어사용을 공식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미 국무부가 밝힌 면담자료에는 웬디 셔먼 부장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에 진전을 이루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환영했다”고만 명시했다. CVID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윤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미국으로부터 의문의 2패를 당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윤 정부의 ‘닥치고 한미동맹’ 후폭풍은 한미일 안보협력카드를 꺼내는 순간,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겉포장은 안보 협력이지만 속내는 합동 군사훈련이다. 일본 자위대의 동해안 진입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다. 윤 당선인은 ‘유사시’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 가능성을 흘리기도 했다. 안팎의 부정 기류로 물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언제든 터져나올 메가톤급 이슈임에 분명하다.

우크라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 세계에 전쟁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진짜 전쟁영웅이라면 개전 초 러시아군을 격퇴했던지,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외교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자국민이 집단학살당하고, 국토가 참혹하게 유린당한 뒤에 전쟁영웅이 무슨 소용이랴. 현재로선 윤 당선인이 ‘닥치고 한미동맹’에 기댄 채 젤렌스키의 길을 가는 모양새다. 명백한 자살골 행보다. 무릇 외교의 본질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고, 적이 있다면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형철 에디터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