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어느 때보다 혹독한 3월을 보냈다. 감염병 확진자가 전례 없이 늘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수업을 변동하면서 교사와 학생 모두 어려움을 안은 채 첫 만남이 흘러갔다. 필자 역시 코로나19에 걸려 기침과 인후통에 시달렸고 며칠 동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새 학기 대면 수업을 위해 3차 백신을 접종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백신은 특정 병원체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게 한다. 한 번 걸렸던 질병에 면역이 생긴다는 사실은 기원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병에 걸린 사람의 고름을 묻히는 방법이 이용되었는데 고름의 독성을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망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인체에 무해하게끔 병원체를 변화시킨 백신이 등장한 이후에야 인류는 감염병으로부터 무방비한 상태로 당하지 않게 되었다.
백신은 후천적 면역반응을 이용한다. 피부 장벽이나 염증 반응처럼 광범위한 병원체를 대상으로 신속하게 일어나는 방어 작용을 선천적 면역이라 하며, 어떤 병원체 고유의 특성을 인식하는 방어 작용을 후천적 면역이라 한다. B세포, T세포라 불리는 백혈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들의 세포막에는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항원수용체가 존재한다. 흔히 알고 있는 항체는 B세포의 항원수용체를 세포 밖으로 분비한 것이다.
병원체의 종류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항원수용체 역시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세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용체 유전자를 무작위로 자르고 붙여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내는데, 한 사람이 무려 백만 종류 이상의 B세포와 천만 종류 이상의 T세포를 가질 수 있다고 추정된다. 우리 몸이 면역 세포로만 가득 찰 수는 없으므로 이 세포들은 매우 소량 존재하고 있다가 항원과 만난 후에야 증식하여 천천히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특정한 항원에 처음 노출된 후에 해당하는 항원수용체를 가진 B세포, T세포가 증식하고 분화하여 면역반응이 최고치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몇 주가 걸린다. 중증의 질병을 유발하는 항원에 노출되었다면 면역반응이 충분히 일어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감염병을 극복했다면 B세포와 T세포 중 일부는 수명이 긴 기억세포의 형태로 체내에 남아있다가 같은 항원에 다시 노출되었을 때 항원을 공격하는 작동세포로 빠르게 분화한다. 이때 면역반응이 최고치에 이르는 기간이 짧아지며 반응 강도도 높아진다. 병원체에 감염되기 전에 항원수용체를 자극해 기억세포를 미리 만들어 두기 위한 인공 항원이 백신이다. 면역반응은 일어나면서 인체에 유해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백신 제작의 관건이다.
백신 접종을 통해 감염성 질환의 발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율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의 우세 종들은 기존의 백신이 자극했던 항원수용체에 제대로 결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세포가 알고 있던 구조와 다르므로 다른 항원수용체를 가진 세포를 새롭게 증식시켜 면역반응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다 보니 백신을 접종했는데도 감염병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병원체의 변이종이 꾸준히 전파되는 상황에서 기존 백신의 추가 접종 효과는 미지수다. 다만 우리 몸에 존재하는 수백만 종류의 항원수용체들은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병원체에 결합하며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