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년 만에 통과된 美 '린치금지법' 바이든 서명

입력
2022.03.30 18:50
가해자에 연방법 적용… 최대 징역 30년 가중처벌
 ‘인종차별·편견에 근거한 중대범죄’ 규정 
약 200번 의회 통과 실패… 바이든 취임 후 급물살

사법기관이 아닌 개인이나 단체가 가하는 ‘사적 형벌’(私刑), 이른바 ‘린치’(Lynch)를 증오범죄로 규정해 최대 징역 30년형에 처하는 법안이 조만간 미국에서 시행된다. 의회를 통과한 해당 법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서명하면서다.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미국에서 최초 발의된 지 122년 만의 일이다.

이날 AP·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미 의회가 통과시킨 '에멧 틸 안티린칭 법안(The Emmett Till Antilynching Act)'에 서명하며 "린치는 모든 미국인이 미국의 구성원이며 동등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완전한 테러"라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미국 연방법상 린치를 단순 폭행이 아니라 '인종차별 또는 편견에 근거한 중대범죄'로 규정해 가해자를 최대 징역 30년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는 수사기관이 린치 범죄 가해자에게 단순 폭행 등 주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앞으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높은 연방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수 있다.

통과된 법안은 1955년 여름 미국 미시시피에서 린치 범죄로 살해된 흑인 소년 에멧 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당시 14세이던 에멧은 친척을 방문하러 시카고를 떠나 여행하던 중 변을 당했다.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납치돼 구타당하고 머리에 총을 맞은 뒤 목에 철조망이 감긴 채 강물 속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로이 브라이언트와 그의 이복형제 J.W. 밀람 등 백인 남성 2명이 기소됐지만 전원 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무죄를 선고했다. 후에 브라이언트와 밀람은 언론에 “틸을 납치하고 죽였다”고 털어놨다. 한 흑인 소년의 비참한 죽음에 단죄조차 되지 않은 현실을 개탄한 가수 겸 시인인 밥 딜런은 1962년 ‘에멧 틸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분노했다.

린치 방지 법안이 미국에서 통과된 것은 지난 1900년 당시 유일한 흑인 하원의원이었던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조지 헨리 화이트 의원이 처음 제안한 이후 122년 만이다. 그동안 200번에 가까운 법안 통과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앞서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2020년 5월 경찰에 목이 짓눌려 숨진 뒤 미국 하원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저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한 차례 수정된 끝에 지난달 26일 하원과 7일 상원을 각각 통과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122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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