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대기업들이 본격적인 주총 시즌에 돌입했다. 주요 기업들의 올해 주총에선 주주가치 제고에 필요한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포함한 회사의 새 경영가치와 중장기 목표도 제시됐다. 한화 등 일부 대기업에선 3세 경영에 속도를 내면서 새 시대도 예고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9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 주총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공급망 불안, 글로벌 패권 경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됐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환경 속에서도 비핵심 사업을 정비하고 성장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 디지털전환(DX) 등 미래성장을 위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회장은 이어 올해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고객 가치를 가장 최우선에 두고 변화에 민첩히 대응해야 한다”며 “고객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LG만의 고객 경험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또 “앞으로도 그간 정예화해 온 사업 포트폴리오의 질적 성장을 가속화하고 AI, 헬스케어 등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해 지속해서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구 회장의 인사말은 LG 최고운영책임자(COO) 권봉석 부회장이 대독했다.
SK㈜도 이날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주총을 열고 주주 소통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했다. 장동현 SK㈜ 대표이사는 주총 인사말에서 “올해 보유 자산 포트폴리오와 투자전략을 재정비해 주주환원을 포함한 경영체계를 고도화할 것”이라며 “적극적 수익 실현과 자산 효율화를 통해 진정한 프런티어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이성형 재무부문장(CFO)은 “경상 배당 수입의 30% 이상을 배당하는 기존 정책에 더해 기업공개(IPO) 등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한 이익을 재원으로 2025년까지 매년 시가총액의 1% 이상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며 “자사주 소각도 고려하겠다”고 설명했다. 대표이사와 재무·투자 담당 임원들도 단상에 올라 올해 성장 전략을 주주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김양택 첨단소재투자센터장은 “올해는 그룹14 합작회사(JV)의 음극재 상업설비 완공, 베이징 이스프링과의 단결정 양극재 사업 합작회사 설립 등을 통해 차세대 배터리 소재사업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기업에선 이번 주총에서 3세 경영에 힘을 실어줬다. ㈜한화는 이날 주총에서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한화 지분은 김승연 회장이 22.65%, 김동관 사장이 4.44%, 차남과 삼남인 김동원·김동선이 각각 1.67%를 보유 중인데, 김 사장이 ㈜한화 이사진에 새로 합류함에 따라 한화그룹 내 영향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김 사장이 에너지·석유화학 등 주력 사업과 그룹 전반을 총괄하고,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이 금융 사업을, 삼남 김동선 상무는 호텔·리조트·유통 사업을 맡는 방식으로 한화그룹의 승계 구도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가(家) 3세인 정기선 HD현대 사장도 이번 주총 시즌을 계기로 현대중공업그룹 총수 자리에 바짝 다가섰다. 정 사장은 지난 22일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한국조선해양 대표로 선임된 데 이어 28일에는 그룹 지주사인 HD현대의 대표이사 자리에도 올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이 2002년 이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권오갑 회장 등 전문경영인들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 사장이 권 회장과 함께 지주사 공동 대표를 맡으면서 경영승계가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17일엔 효성그룹 오너가 3세인 조현준 회장과 동생 조현상 부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효성티앤씨, 효성첨단소재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에 각각 선임되면서 그룹 장악력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