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값과 특활비

입력
2022.03.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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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옷값이 국가기밀인가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 시민단체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업무상 횡령과 국고 손실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김 여사가 청와대 특수활동비 중 일부를 고가 명품 의류와 브로치·가방 등 장신구를 구입하는 데 쓴 의심이 크다는 주장이다. 앞서 한국납세자연맹도 2018년 청와대에 특활비와 김 여사 의전 비용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이 국익을 해치지 않는다며 공개 판결을 내렸지만 청와대는 항소장을 냈다. 퇴임 전 확정 판결이 날 가능성은 없어 진실은 오랫동안 묻힐 공산이 크다.

□ 청와대는 억울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도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세금도둑잡아라’의 청구를 거부한 바 있다. 검찰과 국세청, 국회, 대법원 등 특활비를 쓰는 다른 기관들도 정보 공개 청구를 거부하고 있다. 사실 기밀을 전제로 한 특활비를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세금을 낸 국민이 사용 내역을 원한다면 소명하는 게 마땅하다. 지난해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사용된 국가 특활비는 1조 원이나 된다.

□ 청와대가 정보 공개를 거부하며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국민 청원에 이어 일부 네티즌은 김 여사의 옷과 명품을 대조하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논두렁 시계’의 악몽을 떠올리며 망신주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곶감을 말리고 손바느질을 하던 김 여사의 모습이 인상 깊은 국민은 곧 물러날 정권을 향한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들에 착잡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 이제 의혹을 잠재울 유일한 길은 정보를 떳떳이 공개하는 것이다. 거부할수록 도대체 뭘 숨기려고 그러냐는 의심만 살 뿐이다. 1999년 옷로비 사건도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밝혔다면 검찰 수사, 국회 청문회, 특검까지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드러난 건 앙드레 김의 본명(김봉남)뿐이었다. 한국 최고 지도자 부인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외교상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까지 문제 삼을 만큼 각박한 국민 정서도 아니다. 비공개가 관행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젠 법치 국가의 수장으로 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따르는 게 옳다. 두려울 게 없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