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대신 '나 관찰, 위안'... 낀세대의 창작법

입력
2022.03.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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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주역 된 낀세대] ②

X세대는 86세대와 비교해 탈이념적이고 탈정치적이다. 메디치미디어가 'X세대에서 낀낀세대로: 40대, 그들은 누구인가'(2019)에서 40~49세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인 결과, 44%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현대사로 IMF를 꼽았다. 1987년 민주화항쟁(11%)보다 무려 네 배나 많은 응답 규모였다. 정치보다 경제에 더 관심이 많은 X세대에겐 개인의 실존이 중요하다. 1990년대 소비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아 개성과 자유를 중시한 세대로, 트렌드에 민감하고 이전 세대와는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 중년이라고 하기엔 젊은 '영포티(Young Forty)로도 호명됐다.

이런 경향은 대중문화 중심에 떠오른 X세대 창작자들에게서도 두드러진다. 이병헌(42), 김보라(41) 감독은 자신의 세대에 대한 고민에 집중한다. 영화 '스물'(2015)과 '벌새'(2019)가 대표적이다.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린 1994년, 중학교 2학년인 은희가 겪은 지독한 상실감을 그린다. 86세대인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 '설국열차'(2013) 등을 통해 계급 문제의 그늘을 들춘다면, 두 X세대 간판 감독들은 세대 관찰에 더 힘을 쏟는다.

거대 담론보다 '소확행'에 집중하는 것도 X세대 창작자들의 특징이다.

나영석(46) PD는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시리즈로 소확행의 '간판'이 됐다. 신원호(47) PD는 드라마 '응답하라'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로 일상의 정(情)을 우려내는 산파다. 계몽('느낌표'·2004)과 한 판 승부('나는 가수다'·2015)는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X세대 창작자의 부각으로 K팝의 화두도 확 바뀌었다. 지난해 400억 원을 벌어 국내 상장사 '연봉왕'을 차지한 프로듀서 피독(본명 강효원·39)은 '돌봄'이란 메시지로 세계에서 반향을 낳았다. 방탄소년단과 함께 '너를 사랑하라'는 뜻의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를 만들어 자기 위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결과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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