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자행됐던 유대인 절멸 작전인 ‘홀로코스트’에서 생환했던 한 우크라이나 노인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탈(脫)나치화’를 주장하면서 일으킨 전쟁에 정작 실제 나치 피해 생존자가 숨지면서 러시아는 가뜩이나 없는 전쟁 명분을 더 잃게 됐다. 민간인 지역을 공격하면서 ‘전쟁 범죄’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21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였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기념관 측은 이날 “부헨발트ㆍ페네뮌데ㆍ도라ㆍ 베르겐벨젠 등 강제수용소 4곳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친구 보리스 로만첸코가 18일 하르키우 자택에서 포격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기념관 측은 소식을 로만첸코의 친지들로부터 들었다며 “깊이 애도한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손녀 율리아 로만첸코는 CNN에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할아버지 거주지역의 포격을 알게 됐으나 통행금지로 바로 갈 수 없었다”며 “(이후) 도착했을 때에는 할아버지의 집이 완전히 불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로만첸코는 1945년 4월 11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해방된 2만1,000명 중 한 명이다. 부헨발트 수용소 해방 73년을 맞은 2018년 하르키우 현지 매체는 로만첸코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한 부헨발트 출신자”라고 전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기념관 측은 로만첸코가 “나치 범죄 기억 작업에 집중했으며 부헨발트-도라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로만첸코가 2015년 부헨발트 해방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평화와 자유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 창조”를 맹세했다고도 전했다. 다시는 전 세계에 나치와 같은 반인륜적인 사상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죽음으로 화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했다. 안드리 예르막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은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탈나치화 작전’인가”라고 반문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네오 나치’를 몰아낸다는 이유로 침공을 감행한 점을 꼬집은 셈이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범죄”라며 “(로만첸코는) 히틀러로부터는 살아 남았지만, 푸틴에게는 살해당했다”고 애도했다.
러시아 접경 도시인 하르키우는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결사 항전을 이어가고 있다. 가디언은 지역 관계자를 인용해 개전 이후 하르키우에서 5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이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