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 함락 임박…러, 핵 탑재 가능 극초음속 미사일 쐈다

입력
2022.03.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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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킨잘' 이틀간 첫 투입...주말공세 가속
서방 전문가 "러군, 전면 승리 가능성은 희박"
마리우폴 함락 땐 '절반 승리'... 휴전협정 가능성
주민 400명 대피한 예술학교 폭격... 잔해에 깔려
우크라군, "러시아 장성급 개전 후 5번째로 숨져"


아조프해를 향해 뚫린 우크라이나의 ‘숨구멍’ 마리우폴이 함락 초읽기에 들어갔다. 러시아군이 시내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개전 25일차인 20일(현지시간)까지 수도 키이우 점령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전면적 승리는 선언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리우폴을 점령한다면 최소한의 ‘전략적’ 승리를 거둬 휴전 협정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러시아의 ‘체면’이 세워지는 만큼 그간 양국의 피해를 감안할 때 사태를 일단락짓자고 결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러시아군은 또 핵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처음 꺼내들어 이틀 연속 발사했다.

마리우폴 시장실 한 관계자는 전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시가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 친(親)러시아 반군 세력이 장악한 돈바스 지역과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마리우폴은 개전 이후 3주 가까이 러시아의 포위망에 맞서 사투를 벌여 왔지만 사실상 함락을 눈앞에 둔 모습이다. 이날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아직까지는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도시로 남아 있다”고 밝혔고 마리우폴을 근거지로 하는 특수부대 ‘아조프 대대’ 역시 “격전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잇따른 노력에도 러시아군의 포위망이 뚫리지 않아 함락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러시아군은 주민 약 400명이 대피한 마리우폴의 한 예술학교 건물을 폭격해 주민 상당수가 잔해에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동영상 연설에서 마리우폴을 대상으로 한 러시아의 공격을 “수세기 동안 기억될 테러”라고 맹비난했다.


러시아군은 주말 동안 잇따라 공세를 펼쳤다.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도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남서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州) 델라틴 소재 우크라이나군 미사일 저장고에 킨잘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킨잘은 최고 속도 마하 10(초속 3.4㎞)인 공대지 미사일로 핵탄두 등을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킨잘이 실전에서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인근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용 통신 및 정찰 센터도 흑해 해안 미사일 시스템을 사용해 폭격했다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오전 키이우와 수미, 미콜라이우, 폴타바, 하르키우, 오데사, 자포리자, 르비우 등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공습 경보가 울렸다고 전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18일 격전지 미콜라이우에 있는 우크라이나 해병 여단 사령부를 공격해 우크라이나 병력 약 4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러시아 남부 8군 사령관인 안드리아 모르드비체프 중장이 우크라이나 헤르손 공항 인근 초노바예프카 비행장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크라이나군이 전사시켰다고 주장한 러시아군 장성급 인사는 총 5명으로 늘어났다.

다만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이번 전쟁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는 이날 공개한 19일 기준 전황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공군과 방공군이 영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국방부는 또 “러시아가 제공권 확보에 실패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러시아 영공에서 원격(Stand-offㆍ스탠드오프) 공대지 미사일에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러시아의 킨잘 미사일 발사를 감안한 평가로 보인다. 미국 기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19일자 전황분석을 통해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함락시키더라도 (전쟁) 결과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러시아군이 앞으로 자포리자와 드니프로를 고립시킨 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인 크리비리로 진격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 주 내로 이들 도시를 점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측했다.

러시아의 전면전 승리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과 맞물려 휴전 협상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AP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논의에서 “우크라이나는 항상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전날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대표단 대화를 설명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다만 러시아가 휴전협정을 제안한다고 해도 이를 다 믿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전날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연막작전일 수 있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상황이 애초 계획대로 풀려가지 않자 러시아군을 다시 결집하는 기회로 악용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 트러스 장관의 분석이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고통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덮치고 있다. 유엔인권사무소(OHCHR)는 지난달 24일 개전 후 19일 0시 현재까지 어린이 64명 등 민간인 847명이 사망했으며 어린이 78명 등 민간인 총 1,399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조차 집계 지연 등으로 최소치라고 OHCHR는 덧붙였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18일 정오 기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난민 수가 333만 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