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내년 1월로 미뤄진 가상화폐 과세 시기를 2024년 초까지 1년 더 늦추는 방안을 검토한다. 가상화폐 과세의 전제 조건인 업권법을 제정하기도 전에 세금부터 걷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가상화폐 투자로 소득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세금 부과를 더 연기했다간 조세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가상화폐 '선 정비 후 과세 원칙'에 따라 인수위는 과세 시기를 내후년으로 미루는 방안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올해 1월부터 연 250만 원을 넘는 가상화폐 양도소득에 22% 세율로 세금을 매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말 과세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가상화폐 세금 부과를 1년 미루기로 합의한 데 이어 인수위 역시 추가 유예를 들여다보는 상황이다.
가상화폐 과세를 1년 더 늦추려는 이유는 지난해 1차 연기 때와 비슷하다. 가상화폐 세금을 강제하기 전에 먼저 시장 규율부터 세워야 한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는 불완전 판매, 시세 조종 등 불공정행위 처벌 등을 담은 다수의 업권법(가칭 가상화폐기본법)이 발의돼 있다.
문제는 가상화폐 업권법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 논의 수준이 아직 걸음마단계라는 점이다. 오는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안 논의가 속도를 내더라도, 업권법 제정은 빨라야 올해 말 정기국회에서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안 마련 후 실제 시행까진 또 시일이 걸려 곧바로 내년 초부터 과세는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게 국민의힘 쪽 분위기다.
또 최근처럼 가상화폐 시세가 떨어진 마당에 세금을 걷겠다고 나섰다간 770만 투자자로부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과세 유예를 고민하는 배경이다. 가상화폐 '대장 코인'인 비트코인 시세만 보면 이날 5,000만 원대 초반으로 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11월 8,200만 원과 비교해 크게 후퇴했다.
반면 한편에서는 이런 과세 유예 움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나온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눈감아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가상화폐 거래로 번 수익에 세금을 매기는 주요국과 비교해 뒤처진다는 지적도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대선 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밀어붙였던 가상화폐 과세 유예를 선거가 끝난 뒤 더 연장하려는 건 재고해야 한다"며 "조세 원칙을 바로잡아야 할뿐 아니라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해 가상화폐 과세 정상화를 통한 세금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