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황당한 공지를 받았다. 자가검사키트 결과 양성이 나와도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추가로 PCR검사나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공식 확진자가 되면 7일간 격리해야 하니 업무상 차질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3일간 자체격리를 하면 유급휴가를 주겠다는 유인책을 내걸었다. 만일 공식 확진자로 분류돼 격리해야 한다면 개인 연차를 사용하고, 정부로부터 유급휴가 미제공에 따른 금액 지원을 알아서 받으라고 덧붙였다.
비단 A씨 회사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4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폭증하자 방역수칙을 어기거나 경시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격리 의무 부과를 피하기 위해 보건소 PCR검사나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일부러 하지 않거나, 격리 막바지 외출하는 경우도 있다. 확진됐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슈퍼항체 보유자라며 '사회적 거리 좁히기'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16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전날보다 3만8,419명 증가한 40만741명으로 총 누적 확진자 수도 762만9,275명에 달했다. 30만 명대에서 40만 명대로 마침내 진입한 것이다.
이처럼 확진자가 폭증하자 방역지침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감염 가능성이 큰 데다, 걸려도 치료를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백신 맞았다면 걸려도 계절독감 수준"이라는 방역당국의 반복적 메시지도 한몫했다.
20대 B씨는 자가검사키트로 양성 반응을 확인한 뒤 추가로 PCR검사나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는 대신 집에서 '셀프 치료'했다. 이른바 '샤이 오미크론'이다. 그는 "확진되면 지켜야 하는 격리를 피하려 추가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서 "공식 확진자가 된다 해도 지금처럼 홀로 치료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확진자임에도 격리 마지막에 무단외출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감염병예방법상 무단외출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달 자가격리앱이 폐지되면서 외출 여부를 알 방법이 없어서다. C씨는 "나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증세가 빨리 없어졌고 자가검사키트 음성도 나왔길래 격리 5일째 외출했다"면서 "관리할 방법도 없는데 온전히 격리를 지킬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완치자들 중엔 아예 재감염 안 될 것처럼 구는 사람들도 있다. 완치자 이모(27)씨는 "이제는 백신만 맞고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위험하니 완치자들끼리 모여 편히 놀자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백신 맞고 감염까지 됐으니 '슈퍼항체 보유자'라며 축구를 하겠다는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호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심정은 이해가 되나, 그럼에도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격리 등 관리대상이 되면 어길 시 책임을 져야 하다 보니 회피하는 것 같다"면서 "그럼에도 방역정책을 통해 전체적인 유행상황을 통제할 수 있으려면 꼭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방역당국도 '방역수칙 준수'라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내야 한다"며 "완치자라 해도 마스크 착용 등 개인 위생 관리는 당분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 또한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기본적 방역수칙은 누구나 지켜야 한다"며 "특히 기저질환이 있거나 60세 이상 등 고위험군은 신속한 검사와 대응이 가장 중요하니 절대 검사를 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