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신모(45)씨는 코로나19 이후 여러모로 생활이 팍팍해졌다. 가장 큰 원인은 사교육비다. 코로나19로 등교하는 날이 줄면서 중위권인 아들 성적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 국·영·수 학원을 다니긴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과외를 늘렸다. 신씨는 "월 70만~80만 원을 더 쓰니 한 달 사교육비만 150만 원이 훌쩍 넘는다"며 "확실히 경제적으로 많이 쪼들리는데 떨어지는 성적을 붙잡으려면 별달리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지출액이 23조4,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등교일수가 줄면서 기초학력 저하, 학습격차 확대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사교육 쏠림 현상을 가속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지출액은 23조4,000억 원으로, 전년(19조4,000억 원) 대비 21%나 증가했다. 역대 최대 증가율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1조 원)보다도 약 10% 늘었다. 방역 강화 등으로 주춤했던 사교육 시장이 어느새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은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 정규과정 외에 사적인 필요로 학교 밖에서 받는 보충교육을 가리킨다. 학원, 과외, 방문학습지, 인터넷 및 통신 강좌 등이 해당하며, 방과후학교, EBS 교재비, 어학연수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교육비 지출은 가구 소득에 따라 5배까지 벌어졌다.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11만 6,000원이었던 반면, 800만원 이상인 가구는 59만3,000원으로 5.1배 많았다. 코로나19로 공교육이 맥을 못추는 사이 사교육은 급격히 팽창하면서 빈부에 따른 교육 격차가 더욱 커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사교육 참여율과 참여 시간도 늘었다. 지난해 사교육 참여율은 75.5%로, 전년 대비 8.4%포인트 증가했음은 물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74.8%)을 넘어섰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방역이 강화하고, 감염 우려로 대면수업을 꺼리면서 사교육 참여율이 67.1%에 그쳤다. 주당 사교육 참여 시간은 6.7시간으로, 전년보다 1.5시간, 2019년보다 0.2시간 늘었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같은 일반교과 사교육비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늘었다. 특히 국어와 사회/과학의 경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31.5%, 26.1%로, 영어(19.2%)나 수학(17.1%)보다 높았다. 국어나 사회/과학 사교육을 받지 않던 학생들이 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것이다. 이난영 교육부 교육안전정보국장은 "일반교과 전반에 대해 학습결손 불안 심리가 많이 작용해 사교육 수요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36만7,000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2위인 2019년 32만1,000원보다 4만6,000원 많다. 2020년은 30만2,000원으로 3위다.
학교급별로는 고등학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41만9,000원으로 가장 많았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로는 초등학교가 가장 높았다. 초등학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2만8,000원으로, 지난해 대비 무려 39.4% 늘었다. 같은 기간 중학교(14.6%), 고등학교(6%) 증가율과 비교하면 매우 높다. 예체능 사교육 비중이 큰 초등학생 특성상 대면 활동이 늘면서 이 분야 사교육비가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실제 초등 예체능 사교육비는 2019년에 1인당 월평균 11만8,000원에서 2020년 7만6,000원으로 줄었다가 2021년 11만9,000원으로 다시 늘었다.
교육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대면수업으로 학사운영 정상화 △방과후학교 정상화와 돌봄 확대 △교과학습 보충과 튜터링 지원 △기초학력 국가 책임지도 강화 △인공지능(AI) 기반 온라인 맞춤형 학습 시스템 확충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비 증가를 막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예측 가능한 입시제도"라며 "이를 빼고 사교육 대책을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꾸짖었다.
다만 현재로서는 코로나19로 흔들린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을 근본 대책이라 평가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부실해진 학교 교육 정상화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후 한두 단계 더 나아가 고교학점제 맞춤형 교육 실시 등으로 사교육비 증가에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