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를 배척할 이유가 없다

입력
2022.03.17 18:30
26면
공무원 사회의 지속된 사기추락
尹당선인은 첫 공무원 출신 대통령
국정 성공하려면 관료역량 활용해야

새 권력이 들어서면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행태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반(反)관료적 태도다. 여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선출 권력이 상위이고 임명직 직업관료는 하위라는 서열 의식. 둘째, 공무원들은 현실안주, 책임회피적이라는 고정관념. 셋째, 정부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알아서 순종하라는 군기잡기.

관료에 대한 배타성은 대체로 보수정부보다 진보정부가 강한 편이지만, 무조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경제구조조정 과정에서 학자출신 참모보다 경제관료들(이헌재 강봉균 진념 등)을 훨씬 중용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워낙 많았던 탓인지, 관료들의 일하는 방식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도 반관료 성향으로 치면 단연 현 정부가 으뜸일 것이다. 역대 정부의 인재활용 패턴을 보면 집권 초엔 주로 학자들을 중용하다가, 집권 후반부로 접어들면 관료들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속칭 '어공'과 '늘공'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론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왔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청와대는 임기 내내 캠프와 시민단체 출신 위주로 운영됐다. '법무법인 청와대'란 말이 나올 만큼 변호사들이 많았고, 공무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인사들이 주로 요직에 앉았다. 현 정부는 검찰만 싫어한 게 아니라 경제관료, 직업외교관도 기피했다.

커진 청와대, 강해진 의회로 인해 부처 자율성은 점점 위축됐다. 적폐청산 및 원전수사 등이 이어지고 정무직 아닌 실무자급 공무원들까지 사법처리와 징계를 당하면서, 공무원 사회의 불만과 불신은 커져만 갔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사이에서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공무원들은 정권을 힘들어했고, 정권은 공무원들을 별로 존중하지도 보호하지도 않았던 5년이었다.

공무원을 적대시하는 정권을 이해할 수 없다. 영혼이 있든 없든, 색깔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일단 공무원은 정권철학에 맞추게 되어 있다. 고도로 훈련된 정책 기술자들이고, 문제 해결사들이다. 정권에 성공을 선사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실패를 떠안기지는 않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전문 관료들을 좀 더 중용했다면, 장하성-김수현-김상조로 이어졌던 학자 출신 정책사령탑을 좀 달리 가져갔다면, 정책의 결과들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숙련된 관료들이 맡았다면 절대로 '탈원전' '비정규직 제로' 같은 비현실적 용어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사실상 첫 공무원 출신 대통령이다(군인대통령은 빼자). 검사가 일반 행정관료와는 다른 특수직이고 조직문화도 유별나지만, 그래도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공무원 사회를 잘 알 테니, 윤 당선인은 향후 국정운영에서 관료들을 잘 활용했으면 한다.

테크노크라트 정부를 만들자는 건 아니다. 우선은 조언을 했던 정치인과 학자들, 새롭게 발굴할 전문가들, 가능하면 반대편 출신까지 다양한 인재들을 청와대든 행정부든 폭넓게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정책의 비용편익을 분석하는 능력, 부작용을 바로잡는 능력은 누구도 직업 관료들을 따라갈 수 없다. 이들을 배제하는 건 그런 역량을 배제하는 것이고, 그 손실은 오로지 정권과 국민의 몫이 된다. 전문가와 기술자를 빼고 '동지'들만으로 국정을 꾸려가려고 했던 현 정부의 오류를 잘 새겨봐야 한다.

또 하나, 관료 중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인사를 중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후보 3배수에도 끼지 못할 사람이 이런저런 연고로 장차관이 되고, 수석비서관이 된다면, 그 부메랑 또한 정권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반드시.




이성철 콘텐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