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 업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소속 아티스트를 활용한 음악이나 콘텐츠 사업을 넘어 다양한 사업으로의 진출을 통해 수익 창출 시스템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엔터사들이 하나둘 손잡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주류업계다.
최근 AOMG와 하이어뮤직 대표직을 내려놓고 새 엔터사 모어비전(MOREVISION)을 설립, 새 도전을 알린 가수 박재범의 소주 사업부터 국내 수제맥주 브랜드와 컬래버에 나선 힙합 레이블 AOMG까지. 주류 사업에 발을 디딘 이들의 행보는 그간 F&B(Food and Beverage) 사업에 도전했던 대형 엔터사들과는 또 다른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엔터 업계와 주류 업계가 손을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윈윈' 전략이었다.
치열한 업계 경쟁 속 보다 많은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고 입소문을 타는 것이 중요한 주류 업계에게 대중적 인지도와 파급력을 갖춘 엔터사(혹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상당한 이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더이상 소속 아티스트를 활용한 수익 창출에만 의존하기 어려워진 엔터 업계에게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주류회사의 컬래버는 매력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를 피하기 어려운 타 외식 사업에 비해 주류 시장의 경우 '혼술족'과 '홈술족'의 증가로 큰 타격 없이 오히려 매출 호조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역시 엔터사들이 주류 업계와 손을 잡고 나서게 된 배경이 됐다. 또 해외 팬들의 관심이 높은 K팝 콘텐츠를 활용해 글로벌 주류 시장으로의 입지 확대까지 꾀할 수 있다는 점도 구미를 돋우는 지점이다.
박재범이 대표로 나서며 일명 '박재범 소주'로 유명세를 탄 '원소주'는 이같은 협업의 시너지를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소주는 지난달 팝업스토어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초기 생산물량인 2만 병 '완판'을 기록했다. 출시 기념 굿즈로 준비했던 글라스의 경우 판매 첫 날 모두 소진됐고, 1인당 판매 수량을 제한한 탓에 팝업스토어에는 해당 소주를 구입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오픈런'까지 연출됐다.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표방한 만큼 한 병당 1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출시됐지만 이에 대한 큰 반감은 없었다. '박재범 효과'와 고급화 전략, 희소성에 대한 니즈가 MZ세대의 관심을 붙잡는데 성공한 덕분이다. 박재범이 AOMG와 하이어뮤직 대표직을 내려놓고 소주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뜨거웠던 관심이 소비자들의 구매로 이어진 셈이다.
'박재범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소주 사업을 위해 설립한 스타트업 회사인 원스피리츠는 '원소주' 출시 전 이미 굵직한 해외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해외 시장 진출의 초석을 쌓았다. 지역특산주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만큼, 정식 론칭 전부터 쏟아진 관심과 든든한 투자 유치는 시장 경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구가할 전망이다.
이 역시 국내 뿐 아니라 해외 팬들이 두터운 박재범의 이름값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결과다. 원스피리츠 측 역시 해당 투자에 대해 "기존 국내 주류와는 달리 박재범과 국내외 셀럽의 인지도, SNS를 통한 홍보를 바탕으로 제품 출시 전부터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재범 소주'가 큰 이슈를 낳은 뒤 AOMG도 깜짝 소식을 전했다. 이번엔 맥주 브랜드와의 협업이었다.
일명 'AOMG 맥주'로 불리며 론칭을 알린 해당 아워 에일은 국내 수제맥주 브랜드인 '제주맥주'와의 컬래버로 탄생했다. 이들은 국내 최초로 맥주와 음악 콘텐츠를 결합한 맥주를 선보인다는 설명이다.
AOMG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만큼 정식 출시 전부터 소속 아티스트를 활용한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시작됐다. 이하이 그레이 등 AOMG 소속 인기 가수들이 SNS를 통해 해당 맥주를 직접 마시는 모습을 공개하며 해당 맥주를 향한 관심은 금세 뜨거워졌다.
제주맥주 측 관계자는 AOMG와의 협업에 대해 "그동안 이종 산업간 다양한 컬래버를 선보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온 만큼 이번 협업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며 "관습과 관행을 탈피하고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산업을 리드하겠다는 양사의 공통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컬래버가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맥주는 AOMG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며 주류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맥주의 QR코드를 통해서만 접속 가능한 AOMG 아티스트의 디지털 공간과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의 목소리, 직접 고른 플레이리스트는 기존 맥주와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마치 AOMG 아티스트와 함께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컬래버에서는 총 네 명의 AOMG 아티스트가 순차적으로 컬래버에 나선다. 이달 중순 정식 판매가 예정된 만큼 아직 첫 컬래버 주자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쏟아지는 팬들의 관심 속 'AOMG 맥주' 역시 시장 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관계자는 "앞으로도 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시대의 컬쳐 아이콘과의 파트너십을 이어갈 예정"이라는 말로 향후 타 엔터사와의 협업 가능성도 시사했다.
주류 업계에 스며든 엔터 업계의 파급력이 상당하다. 아직까지 '블루오션'으로 여겨지고 있는 엔터사와 주류 회사의 협업이 어떤 형태로 진화하며 영역을 넓힐지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