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한 지상파 방송국이었다. 주말 예능프로그램의 구성작가로 일했다. 정규직이 아니기에 4대 보험의 혜택이 없었고, 대본 구성료를 주급으로 받는 형태로 고용되었기에 방송국을 직장이라고 해도 되는지, 나의 직업이 작가가 맞긴 한 건지 고민하면서 출근을 하곤 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사무실 문을 나오거나 사무실에서 촬영장으로 이동하며 두 번 출근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퇴근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코너의 세부 역시 퇴근만큼이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촬영장 세트 뒤와 작가 대기실의 풍경, 일요일 오후 방송 시간을 뺀 나머지 6일 22시간 30분만이 생생하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 가서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사건 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지고, 방송국 배경의 시트콤을 만들면 소재로 쓰기에 딱 좋은 에피소드들을 차곡차곡 적립할 때마다, 여전히 방송국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1~2년 차 작가 동료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차라리 이걸 방송에 내보냈어야 하는데! 이게 더 재미있지 않아?"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드라마의 소재가 되곤 한다. 할리우드의 가장 뛰어난 각본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론 소킨 역시 '왈가닥 루시'의 주인공 루실 볼의 전기영화를 만들면서 시트콤 한 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형식을 택했다. '리카르도 가족이 된다는 것'은 루실 볼이 공산당이라는 혐의를 받았던 1952년 어느 날로 시간여행을 떠나, 그 시절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시트콤 '왈가닥 루시'의 에피소드 한 편이 만들어지는 일주일을 따라간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전작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 이어 '리카르도 가족이 된다는 것' 역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서 볼 수 있게 됐다. 이 작품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익숙하지 않은 플랫폼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가입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몇 가지 정보를 더 알고 있는 것이 좋다. 먼저 배경이 되는 1950년대 초반의 미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이다. 광적인 반공산주의 열풍인 매카시즘이 몰아치던 당시, '아무개는 공산주의자다'라는 소문은 곧바로 현실의 낙인이 되었다. '왈가닥 루시'의 스타 루실 볼이 공산주의자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시트콤과 연결된 모든 이해관계자가 찾아와 쇼의 앞날을 논의하는 초반의 심각한 분위기는 당시 사회의 맥락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시 '왈가닥 루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로 보면 더 흥미로운 시청이 가능하다. 1951년부터 1957년까지 방영된 이 시트콤은 관객 앞에서 직접 연기하는 미국 초기 시트콤 형태를 완성한 작품으로, 이후 수많은 시트콤과 코미디 장르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 CBS에서는 최근까지도 흑백인 원작을 컬러 버전으로 바꾼 에피소드를 2, 3편씩 공개하고 있다.
'왈가닥 루시'의 주인공 루시를 연기하는 코미디 배우 루실 볼(니콜 키드먼)이 공산주의자라는 폭로로 조사를 받아야 했던 어느 날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폭로로 인해 쇼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는 있지만, 촬영 일정은 전체 대본 리딩으로부터 카메라 리허설까지 순서대로 진행되고, 영화는 이 시간을 따라간다. 그 사이 루실과 남편 데시 아르나스(하비에르 바르뎀)의 만남과 결혼 생활에 관한 사연이 배치된다. 영화는 전체를 묶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장르는 불분명하다. 강렬했던 두 사람의 만남과 로맨스는 뮤지컬이었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방송 촬영 현장의 블랙 코미디가 되고, 루시와 데시만 있을 때는 부부 치정 드라마가 되는 식으로 끊임없이 시간대를 오가며 장르를 바꾼다. 하지만 루실 볼이 모든 순간의 이야기를 지탱하기 때문에 의외로 산만하지는 않다. 배우이며 스타이고, 아내이자 엄마이며,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일하는 여성인 루실 볼의 자리에서 리카르도 가족이 된다는 것'을 보면, 이 복잡한 형식 안에 아론 소킨이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보인다. 그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쇼는, 곧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루실이 원하는 일이다.
'왈가닥 루시'의 원제는 '사랑해 루시(I love Lucy)'이다. 천진하고 사랑스러우며 몸을 써서 웃기는 루시와는 달리, 촬영장의 루실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주연 배우는 아니었다. 루실 볼은 프로듀서, 연출가, 작가들과 갈등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본의 지문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쇼의 완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루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방향 키다. 누군가에게는 루실이 쇼에 이상한 집착을 보이는 인물일 수 있고, 아론 소킨 역시 극의 초중반까지는 비슷한 시선으로 인물을 묘사한다.
하지만 '왈가닥 루시'는 루실 볼의 쇼이고, 루실만큼 이 쇼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루실과 데시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이 쇼가 루실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실이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인 데시가 상대역으로 출연할 수 있었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왈가닥 루시'로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쿠바계 미국인인 데시가 가장 미국적인 가정주부 캐릭터인 루시와 짝이 된다는 건, 당시 미국 방송계의 편견과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서는 시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루실은 그 자리에 있는 단 한 명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도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다. 마치 저녁 식사 장면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아론 소킨이 데시의 일과 루실의 일을 그리는 방식을 비교하면서 보면, '행복한 우리 집'에 함께하는 가족 구성원 중 남편과 아내의 일이 어떻게 다른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바깥 사람'으로서 권력과 협상하고 아내의 커리어를 걸고 도전을 감행하는 데시가 만드는 게 결과라면, 시트콤 속 캐릭터가 살아 있고 사랑받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지 살피는 루실이 하는 일은 과정이다. 과정 없이 결과는 없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쩌면 지금도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더 작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임신한 여자가 TV에 나올 수 없었던 시대, 여자가 남자보다 성공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시대에 자기 이름을 딴 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 한 여성이 촬영장 안과 밖의 집을 지키기 위해 고된 싸움을 이어가지 않았다면, '왈가닥 루시'는 없었다. 현실에서 행복한 우리 집을 지켜낼 수 없다면 루시의 가족과 행복만은 지켜내고자 했던 루실 덕분에, 쇼는 계속된다. 루실과 데시가 쇼윈도에서 내려올 때까지.
이 고독한 싸움에서 루실의 곁을 지켜주는 작가 매들린(앨리아 쇼캣), 그리고 극 안과 밖의 절친인 비비언 반스(니나 아리안다)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루실에게 크고 작은 불만이 있으며,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에 처한 루실에게 또 다른 갈등을 더한다. 금녀의 공간에 가까웠던 작가실에 자기 자리를 얻어낸 젊은 여성 매들린은, 그 누구보다도 재능이 있는 루실이 남편 데시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비비언은 자기 캐릭터의 외모를 비하하는 방식의 유머가 이어지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이들은 루실이 어떤 사람인지, 세트장 뒤에서 루실이 어떤 싸움을 해왔는지를 알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루실이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는 순간, 루실과 함께한다. 일터의 여성 동료들이 우리의 쇼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만든 작은 연대의 풍경이다. 시청자에게 보이는 하이라이트는 루실이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세트로 들어서는 그다음 장면에 있지만, '리카르도 가족이 된다는 것'의 하이라이트는 이 순간이다. 루실과 그의 동료들도 언젠가 "그 순간 정말 좋지 않았어? 그걸 내보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그걸 영화로 만든다. 과정을, 현장을, 행복하고 찬란한 풍경 뒤의 그림자를. 이 일을 아론 소킨과 니콜 키드먼이 해냈다면, 이 작품을 보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