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버겁다' 메시지 남기고 세상 떠난 故 이힘찬 드라마 프로듀서..."사측은 진상 규명하라"

입력
2022.03.03 17:47
SBS  자회사 스튜디오S 소속 고 이힘찬 프로듀서
'모든 게 버겁다'는 메시지 남기고 세상 떠나
"고인 노트북·서류서 업무 과중 흔적 드러나"
대책위 "사측은 공동 조사 응하고 진상 규명하라"

SBS의 드라마 제작 자회사인 스튜디오S 소속 34세의 한 드라마 프로듀서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업무 관련성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측은 진상 규명을 위한 유족과 노동조합의 공동조사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힌 걸로 알려졌다.

유족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민주노총 법률원,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등으로 구성된 '스튜디오S 고 이힘찬 드라마 프로듀서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는 3일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1월 30일 스튜디오S 소속 이힘찬 프로듀서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자체적으로 수집한) 동료들의 증언, 업무 자료 등을 토대로 고인의 사망에 업무로 인한 압박 등 업무 관련성이 있음을 파악했"며 사측이 적극 협조해 공동조사에 임할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씨는 2012년 4월 SBS에 입사한 후 약 10년 간 SBS와 드라마 제작 자회사인 스튜디오S에서 일해왔다. 이씨는 2020년 4월 드라마본부 분사때 스튜디오S로 전적해, 지난해 9월부터 올 상반기 방영 예정인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었다. 대책위는 고인이 남긴 노트북이나 서류에서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에 배정된 턱 없이 부족한 예산과 시간, 인력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 지 불과 20여 일 후인 1월 30일, 이씨는 '모든 게 버겁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망 당시 고인의 머리맡에는 'CG(컴퓨터 그래픽) 우선 요청 리스트'가 놓여 있었고, 방에는 업무 관련 서류가 널브러져 있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고인의 사망에는 드라마 제작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사회적 타살의 혐의를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스튜디오S 측은 지난달 18일 1차 공식 면담에서 유족과 만나 약 10페이지 분량의 동료 인터뷰 자료를 제시했다. 유족 대표인 이씨의 동생은 "2주 간 이뤄진 인터뷰는 개인의 소회나 생각을 나열한 자료에 불과해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족은 면담 자리에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SBS까지 참여하는 '노사공동조사위원회' 구성 의견을 사측에 전달했고, 21일 언론노조 SBS본부는 조사위 구성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23일 SBS와 스튜디오S 측은 공동조사 거부를 통보했다. 이에 대책위가 꾸려져 이힘찬 프로듀서의 실명을 밝히는 등 공개 대응에 나섰다. 대책위는 "SBS 측은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진상 규명 노력에 동참하라"고 촉구하며 "사측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진상 규명과 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SBS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스튜디오S 측에서 입장을 전달해오면 SBS도 함께 협의해 입장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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