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의 대표 주자인 넥슨의 김정주 창업자가 미국 하와이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향년 54세.
넥슨의 지주사인 엔엑스씨(NXC)는 1일 보도자료를 내고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NXC 관계자는 "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들어 악화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며 "유가족 모두 황망한 상황이라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김 이사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등과 함께 명실공히 국내 게임업계의 1세대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 이사는 1991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사학위를, 1993년 카이스트 전산과에서 석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그는 특히 '온라인 게임'의 개념조차 일반인들에겐 생소했던 1994년 당시 자본금 6,000만 원으로 창업한 넥슨을 불과 몇 년 만에 국내 게임업계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넥슨은 2000년대 초부터 엔씨소프트, 넷마블과 함께 국내 3대 게임사 '3N'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넥슨은 매출(연결기준) 2조8,530억 원, 영업이익은 9,516억 원(약 915억 엔)을 기록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 게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 바로 김 창업자"라며 "게임업계 '맏형'인 김 창업자를 롤모델로 삼아 개발자가 된 동료들도 많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두고 그동안 넥슨을 둘러싼 수차례 논란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김 이사는 2010년대 국내 게임계 '양대산맥'이었던 엔씨소프트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2016년에는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을 공여한 혐의(특경법상 뇌물)로 기소됐으나 3년간의 송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듬해인 2019년 김 이사는 '넥슨 매각'을 발표했지만 적합한 기업을 찾지 못하면서 매각 시도도 무위로 돌아갔다. 김 창업자는 지난해 7월 NXC의 대표직을 16년 만에 내려놓고 이사로 넥슨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역할에 주력해왔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각종 이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주사로 옮겨간 뒤에는 안정을 찾은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다들 황망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 겸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게임산업에서 넥슨이라는 회사가 갖는 무게에 부응하기 위해 김 창업자가 그동안 부단히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 20년 게임 역사에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 중 한 명인 김 창업자가 너무나 빨리 우리 곁을 떠나 안타깝다"고 했다.
김 이사의 국내 장례 일정은 아직까지 미정이다. NXC 관계자는 "사측도 유족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황망해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추후 확정되는 대로 공지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인 유정현씨와 두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