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지속이냐 평화냐...양국 '협상' 시작, 같은 시각 러 "푸틴 핵전력 강화 명령"

입력
2022.02.2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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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키예프 향한 러시아군 축차공격 막아내
러시아 '키예프 포위전' 가능성 제기... 추가 병력도
개전 후 처음으로 양국 대표단 마주 앉았지만
"양국, 수도 복귀 후 추가 협의"... 별다른 성과 없는 듯

전쟁 지속이냐 휴전이냐 갈림길은 계속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5일 차인 28일(현지시간) 양 당사국은 마주 앉았다.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구체적 타협 대신 양국은 서로의 '홈그라운드'로 복귀한 후 추가 협상을 펼치기로 했다. 수도 키예프를 겨냥한 대규모 공세를 버텨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추가 병력과 러시아의 ‘혈맹’ 벨라루스군의 참전까지 목도하고 있다. 협상 테이블이 가동된 시각, 러시아는 "핵전력 강화 태세 돌입"을 알렸다. 우크라이나 곳곳이 포성과 화염에 다시 휩싸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은 수도 키예프를 향한 러시아군의 예봉을 꺾었다고 주장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키예프 방위군 사령관(대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군이 계속 키예프를 공격했지만 격퇴했다”고 밝혔다. 시르스키 대령은 “적군의 장비를 파괴했다”며 “(러시아군의) 인원 손실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또 “키예프 외곽을 공격하려던 러시아군의 움직임은 모두 통제됐다”고 덧붙였다. 급기야 키예프시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통행 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대중교통 운영을 재개했다. 제2 도시 하르키프에서도 이날 새벽 폭발음이 들렸지만 큰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전날 기준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민간인 352명이 사망하고, 1,684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어린이 부상자 수는 116명이다.

우크라이나는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러시아군이 키예프 점령을 포기하지 않은 정황은 속속 드러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상업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의 27일 자 위성 사진에 러시아군 대규모 호송대가 키예프 동북부 40마일(약 64㎞) 지점에서 진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호송대는 키예프 북동쪽 이반키우에서 탱크, 보병 장갑차, 자주포 등 중화력을 갖추고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렬 길이만도 3.25마일(약 5㎞)로 추산됐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초기 침공 단계에서 실패했지만 전략을 바꿔 키예프 포위전에 나설 수 있다”고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키 플레이어’는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파병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르면 28일 중 파병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덧붙였다. 벨라루스는 전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비핵국가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핵무기를 담당하는 전략로켓군에 ‘경계’ 태세를 명령한 것과 맞물려 2차 대전 이후 핵무기 실전 사용 가능성이 최고조로 뛰어올랐다는 지적이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러시아 국방부가 이날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핵전력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략미사일 부대와 북해·태평양함대, 장거리 항공사령부 등이 인력을 강화하고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에서 협상을 열었다. 전쟁 개시 이후 양국의 당국자가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즉각 휴전과 러시아 군 철수가 협상 핵심 이슈”라고 밝혔다. 하지만 회담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앞서 휴전 협상을 제의하면서 그간 러시아가 요구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 철회 △중립국화 등을 테이블에 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개최하자는 러시아 측 요구를 거절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장소 문제 외에도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회담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자”고 하면서 성사됐는데, 러시아가 앞서 요구사항을 또다시 요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날 “이번 회담의 결과를 믿지 않지만, 대표단에 시도해 보라고 했다”고 밝힌 점도 러시아 측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AFP통신은 이날 회담 종료 이후 "양 국이 각 수도로 돌아가 추가 협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 합의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ㆍ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우크라이나가 자국 공군 조종사가 조종할 수 있는 전투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폴란드 등 전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가입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구소련 계열 미그(Mig) 및 수호이(Su)기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알렉산드레 클라우스 유럽의회 수석고문은 “한 시간 내로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할 것”이라며 즉각 지원을 공식화 했다.

유엔은 1997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논의 이후 25년 만에 긴급 특별 총회를 소집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전날 긴급회의에서 프랑스가 요청한 긴급 특별 총회 소집안을 통과시켰다.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반대했지만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1개국이 소집에 찬성했다. 이번 긴급 특별 총회는 한국시간 3월 1일 오전 5시에 열린다. 우크라이나의 인도적 위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유엔인권이사회도 이번 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를 긴급 논의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