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가 러시아를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기로 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이번 결정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조치로 러시아뿐 아니라 러시아와 거래를 하는 국내 기업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거나 수출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주가, 환율 등 국내 금융시장이 흔들릴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정부 또한 경계 태세를 거두지 않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독일 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공동 성명을 내고 "러시아를 국제금융으로부터 고립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방 국가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제재인 스위프트 배제를 일부 러시아 은행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러시아를 겨냥한 스위프트 배제가 자칫 국내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스위프트 배제로 러시아와 거래를 많이 하는 미국, 독일 등 서방 국가는 물론, 한국 역시 그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계 말을 종합하면 러시아에 공장을 둔 완성차 업계와 러시아에서 대규모 수주 실적을 올린 조선업계 우려가 가장 크다. 특히 러시아 공장을 운영하는 현대자동차, 기아는 스위프트 배제로 물류·대금 결제가 차단될까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 등 동구권 국가 내 자동차 판매가 급감할 가능성도 있다.
잘나가던 국내 조선업계 역시 불똥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 3사가 러시아와 계약을 맺은 선박 수주 규모만 12조 원으로 알려졌다. 조선사 대금결제가 선박 건조 단계마다 이뤄지는 점을 고려했을 때 '러시아 돈줄'이 막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업계는 제때 대금을 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
수입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은행 신용장을 받지 못해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산 펄프 수입 대리점을 운영하는 A사는 "홍콩 무역업체를 통해 펄프를 수입하는데, 국민·우리·신한 등 국내 은행 4곳으로부터 신용장 개설을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국내 금융시장으로도 파장이 미치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금융시장 지표는 아직 충격을 흡수하고 있으나 스위프트 배제가 전 금융권으로 확대될 경우 출렁일 수 있다. 서방 국가와 러시아 간 긴장감이 고조돼 제재 수위가 강해질수록 국제 금융시장 변화에 민감한 주가, 환율, 채권 금리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국제 금융시장 변동에 취약한 단기금융시장부터 충격에 잘 견딜 수 있는지 집중 점검에 나섰다. 단기금융시장은 2년 전 코로나19 발병에서 비롯된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의 재연을 막기 위해 모니터링 강도를 높였다. 주요국 증시가 동반 하락할 경우에 대비해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국내 금융시장 지표는 안정적"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이 국제 금융시장에 끼칠 영향을 지켜보고 있는데 시장 이상 시 이미 마련된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