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유권자들의 '귀'를 괴롭히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17일 선거판은 이미 '거친 말'에 장악당했다. 정책 대결이나 자질 검증은 뒷전이고, 정제되지 않은 자극적인 언어로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만 골몰하는 탓이다.
상대적으로 더 거친 화법을 구사하는 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다. 그는 17일 민주당을 "전체주의 정당"으로 규정하고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짓을 한다"고 주장했다. "히틀러" "무솔리니" "공작전문가" 같은 단어도 썼다. 전날 강원 원주시에선 민주당의 평화특별자치도 공약을 두고 "족보도 찾을 수 없는 이데올로기로 평화자치도를 운운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도 참지 않았다. 그는 17일 윤 후보가 거리 유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겨냥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다. 작은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큰 규칙도 지키지 않는다는 취지였지만, 상대 후보를 '도둑'에 비유한 셈이 됐다. 이 후보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거론하며 "(윤 후보가) 과거보다 훨씬 더 과거인 원시사회로 돌아가려 한다"고 무속 의혹도 재차 제기했고, 야권을 "구태"라고 불렀다.
대선후보가 아닌 인사들의 입은 더 거칠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 후보를 "술 잘 마시는 대통령" "식물 대통령"에 비유했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권력 독점욕에 찌들어 있는 후보"라고 불렀다. 이경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에 대한 외모 품평에 "감사해야 할 일 아니냐"라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후보를 "소고기 도둑"으로 부르며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큰 도둑이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겨냥해 "예전에는 국고를 축내는 사람을 쥐새끼라고 했다. 이런 좀도둑 같은 가족을 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겠느냐"고 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 가족을 "기생충 가족"이라고 칭했다.
양당의 거친 입엔 브레이크가 없다. 당 차원에서 무차별 공격을 장려한다.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의 유세 메시지 가이드라인이 담긴 '대선 유세 메시지 기조' 문건에는 "국민의힘에 신천지가 바글바글하다" "'양말 검사' 출신 '알코올중독 대선후보'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에 대해선 "학위논문 조작, 허위이력에 주가조작까지 3관왕"이라며 '조작의 여왕'이라고 칭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의 '유세 구호 예시' 문서에는 "대선 구호로 '나를 위해 법카 쓰고, 나를 위해 소고기냐'를 쓰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인사도 폭망 정권, 경제도 폭망 정권" "천문학적 투기 의혹, 대장동이 웬 말이냐" 등도 들어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가 17일 공개한 대선 투표 의향 국민 조사에서 "이번 대선이 깨끗하게 치러지고 있다"는 응답은 39.8%에 불과했다. 깨끗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34.4%가 "정당 후보자의 상호 비방 네거티브 때문"이 가장 많이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