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임플란트 회사의 1,880억 원의 역대급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한 명의 팀장급 직원이 1,000억 대의 횡령을 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 직원은 회사 돈으로 금괴를 샀고 주식시장에서 큰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횡령사건의 내막을 다 알기도 전에 115억 원을 횡령한 구청 직원의 범죄소식을 들었다. 구청 직원은 횡령한 돈의 상당액을 주식투자에 쓰고 남은 돈이 없다고 수사에서 밝혔다.
두 사건이 알려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들의 범행을 보도하는 매체는 없다. 횡령사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논하지도 않는다. 임플란트 회사도 구청 관계자도 횡령 사건들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 버리는 듯했다. 일반사람들 역시 그저 윤리의식이 없는 대담한 사람의 범행이라고 넘겨 버린다.
이 두 범죄에는 여타 범죄와 상이한 둘만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임플란트 회사 직원과 구청 직원 모두가 40대 중반이며 조직 내에서 중요 직무를 맡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횡령한 금액을 자산 증식용 투자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절도·강도 범죄자들은 금전적 목적이 범죄의 동기가 되고, 획득한 그 돈을 생활비나 유흥비로 소비해 버리는 것과 달리 이들은 금괴를 샀고, 부동산을 매수했으며, 주식투자를 했다. 이른바 즉흥소비를 위해 범행을 한 것이 아니라 자산 증식을 위해 장기간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다. 두 조직 모두 발각시스템이 엉망이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누구나 금전적 성공을 꿈꾸지만 소비 아닌 자산 증식을 위해 범행을 계획했던 이들을 통해 과정과 도덕과 윤리는 사라지고 '경제적 목표 달성'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사회적 성공이 금전으로만 평가되고 있기에 도박, 횡령 등의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더 나아가 심지어 징역을 산다 하더라도 최후에 몇 십억, 몇 백억의 자산이 있을 경우 비난받지 않는 사회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제도적 아노미라 부른다.
제도적 아노미 사회에서는 불법을 통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려는 유형의 범죄가 넘쳐난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불법도박을 해서라도 돈을 벌면 성공한 자로 추앙받고, 횡령을 해서라도 자산가가 되면 부러움을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굳이 힘들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성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같은 목표를 향해 뛰어가라고 재촉하는 사회라면, 수단이 주어지지 않는 이들에게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좌절하거나 아니면 매우 혁신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선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누군가는 불법이더라도 한 방을 노리는 결과적 성공을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는 후자를 택한 자들을 범죄자라고 부른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이 범죄에 놀랄지언정 한 명의 침입절도나 강도사건에 비해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나의 물리적 삶을 위협하지 않고 흥건한 피와 눈물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법적 과정을 눈감는 사회는 금전적 성공을 이룬 조직폭력배 앞에서 경찰력조차도 무기력한 어느 후진 사회와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불법적 과정을 통한 금전적 획득에는 부러움이 아닌 사회적 비난이, 그리고 처벌은 그 한 방의 몇 배가 가해져야 한다. 조직 내 한 명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조직 내 예방 전략과 초기 탐지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방을 꿈꾸지 않고, 불법이 먹히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금전 이외의 소중한 사회적 가치들이 탄탄히 제도로 자리 잡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