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바삭함을 결정짓는 것은 닭을 튀기는 기름이다. 어떤 기름을 쓰느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진다.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닭을 튀기는 데 사용하는 기름을 ‘전용 튀김유’로 정해 일반 기름과는 차별화된 '고품질'이라고 홍보하는 이유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선 치킨 맛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전용 튀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가맹점 입장에선 기름은 무조건 본사를 통해 사야 하는 구매 강제품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bhc도 전용 튀김유인 '고올레산 해바라기유'의 장점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려 왔다.
하지만 한국일보 취재 결과, bhc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기름은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를 표방한 다른 제품들과 비교해 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bhc는 ①본사가 조달한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를 구매 강제품으로 만들어 ②성분이 유사한 다른 기름보다 비싸게 가맹점에 팔고 있었다. bhc가 식용유 제조회사에서 저렴하게 기름을 구매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회사는 기름 유통을 통해 과도한 마진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bhc는 그동안 홈페이지와 입장문 등을 통해 자사의 고올레산 해바라기유가 '고품질'이라고 강조해 왔다. ①비타민E 함유량이 높고 ②단일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으며 ③포화지방산 함량은 낮고 ④산화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bhc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공식 인증기관인 한국식품과학연구원에 국내에서 유통되는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5종에 대한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bhc 전용 튀김유가 다른 기름과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식품영양과 유지화학 전공 교수 5명에게 의견을 구했다.
분석 대상은 bhc가 현재 가맹점에 공급하고 있거나, 공급한 적이 있는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3종(△롯데푸드 △비앤비코리아 △오뚜기)과 △파리바게뜨에서 사용 중인 삼양사 제품 △급식업체 및 대형마트에 공급되는 대상 청정원 제품 등 5가지로 정했다. 연구원에는 개봉하지 않은 시료 원본을 제공해 튀김유 품질을 좌우하는 △지방산 조성 △올레산 함량 △리놀레산과 리놀렌산 함량 △비타민E 함량 △산가 등을 분석하도록 했다.
연구원 시험 결과, bhc 전용 튀김유는 다른 기름과 비교해 사실상 품질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진행한 시험 분석결과표와 크로마토그램(성분 분리 분석 그래프)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모두 “5종의 기름은 성분 차이가 미미해 어떤 기름이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bhc 전용 튀김유의 성분은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를 표방한 다른 기름과 거의 같았다. 지방산에 포함된 올레산 함량 비율의 경우, 5개 제품 모두 ‘고올레산’ KS 기준인 75% 이상을 맞췄고, 성분 함량도 큰 차이가 없었다. 롯데푸드 기름의 올레산 함량 비율이 약 84.5%로 가장 높았지만, 다른 기름과 비교해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 5인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성균관대의 A교수는 “고올레산 기름을 만드는 이유는 산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함”이라며 “성분 결과표만 놓고 보면 특정 기름이 더 비싸게 팔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단국대 B교수는 “5개 제품의 지방산 조성은 매우 유사하다”며 “기름을 제조할 때 아주 특별한 가공과정을 거친 게 아니라면 차이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산패율을 결정짓는 요소들도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기름은 공기와 접촉하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이 떨어지는데, 이를 '산패'라고 한다. 산패를 막는 ‘항산화제’ 역할을 하는 게 비타민E 성분이다. 장안대 C교수는 “비타민E는 유통 과정 중 일어나는 산패를 막는 토코페롤의 총합인데, 5개 기름의 비타민E 함량은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5개 기름은 식약처에서 정한 산가(acid value) 기준(0.6 이하)도 모두 충족했다.
△지방산 조성비(단일 불포화지방산과 포화지방산 비율) △리놀레산 및 리놀렌산 함량 등도 5개 제품 모두 유사했다. 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과 합성하는 성질이 있어 과다 섭취하면 몸에 좋지 않고, 불포화지방산은 몸의 세포막을 형성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연구원 시험 결과 5개 제품의 지방산 조성비는 8(단일 불포화지방산)대 2(포화지방산)로 비슷했다.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음식물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필수 지방산인 리놀레산(오메가-6)과 α리놀렌산(오메가-3) 함량도 거의 동일했다. 고려대 D교수는 “5개 기름은 화학적 기준으론 99.9%, 차이가 없다”며 “제품별로 각각의 함량 차이는 아주 미미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가격 차이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품질 차이가 없는데도 bhc 본사의 가맹점 공급가는 유독 높았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bhc는 롯데푸드에서 제공받은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15㎏을 9만750원(부가세 포함)에 가맹점에 팔고 있었다. 품질이 비슷한 삼양사의 18L(16.5㎏) 기름을 가맹점에 7만4,800원에 공급하는 파리바게뜨보다 1만5,950원이 더 비쌌다. 대상은 청정원 기름 18L(16.5㎏)를 대리점을 거쳐 급식업체 등에 6만 원에 공급하고 있었다. 1㎏당 공급가로 환산하면 bhc(6,050원)는 똑같은 기름을 파리바게뜨(4,533원)보다 33% 비싼 가격으로 가맹점에 팔고 있는 셈이다.
원광대 E교수는 이에 대해 “5개 제품의 산가나 올레산 함량 등을 봤을 때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특정 회사의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를 강요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품질 차이가 없는데도 bhc가 가맹점에 비싸게 기름을 공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선 bhc가 프랜차이즈의 폐쇄적 유통 구조를 적극 활용해 과하게 마진을 남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름은 거래 강제 품목이기 때문에 가맹점에선 아무리 비싸도 본사에서 제공하는 제품을 살 수밖에 없다. 일반 소비자들은 품질이 비슷하면 비싼 제품을 택할 이유가 없지만, 가맹점에선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올레산 해바라기유의 경우, 식용유 가공업체들은 보통 18L당 4만 원에, 기름값이 아무리 올라도 5만 원 미만에 프랜차이즈 본사에 공급한다”며 “본사가 이렇게 사들인 기름을 9만 원에 가맹점에 판매했다면 해도 너무한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는 가맹점에 구매를 강제하는 고올레산 해바라기유의 차별성과 가격에 대해 bhc 측에 물었다. bhc는 이에 대해 “차별성, 공급처, 제조공법은 가맹본부의 경영상 기밀”이라며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는 통일적 사업 경영을 위해 필수품목으로 지정해 공급하는 상품으로, 가맹점 자체 구매는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bhc에 전용 튀김유를 제공하고 있는 롯데푸드 측은 “bhc에서 원하는 스펙에 맞춰 기름을 납품하고 있다”며 “bhc와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가격과 성분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