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건 죄지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생각일 뿐이다. 이권에 개입해 부당 이득을 취한 사람, 실력 없는데 줄 잘 서서 지금 자리에 오른 사람이나 할 생각 아니겠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권에서 탄압받고도 고개 숙이지 않은 아이콘'으로 떴고, 보수 유권자들은 '통쾌한 복수'를 기대하며 그를 제1야당 대선후보로 밀어올렸다. 윤 후보는 '보복정치는 없다'고 명시적으로 선을 긋는 대신 '죄가 없으면 두려워할 일도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으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현직 검찰총장에서 대선후보로 직행했다는 건 윤 후보의 아킬레스건이다. '검찰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견제가 그를 따라다닌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조작 프레임”이라며 “검찰총장조차 (추미애) 법무부 장관 한 사람에게 갈기갈기 찢겼는데, 어떻게 검찰공화국이 된다는 말이냐”고 했다.
정치 선언 8개월째인 윤 후보는 어느새 자신감으로 무장한 듯 보였다. '차기 정부가 이재명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여야 하는 이유'를 묻자 “오죽하면 국민들이 저를 부르셨겠나.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인터뷰는 김영화 뉴스부문장, 최문선 정치부장,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김현빈·손영하 정치부 기자가 참여해 1시간 50분간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청와대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한다고 공약했는데.
“제가 구상 중인 정부는 지금의 청와대에서 작동할 수 없다. 청와대란 말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민관합동 위원회에 외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재를 모시고, 위원회 사무국을 광화문 집무실과 가까이 두겠다. 대통령이 챙길 어젠다 설정부터 집행까지, 전부 한 건물에서 되게 하겠다.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에 따른 경호 문제도 다 검토했다. 대통령 경호를 지금처럼 (과하게) 할 것 없다. 정부청사 주변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언론에도 자주 모습을 보일 생각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기자간담회를 해야지 않겠나.”
-관저는 어디에 두나.
“지금 집(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살면 좋겠지만, 수도방위사령부 경비가 미치는 서울시내 구역 안에 관저를 둬야 한다고 들었다. 가능하다면 일반 국민이 사는 정도의 자그마한 단독주택을 구해 아내와 함께 들어가려 한다."
-개헌 없이 청와대 이전만으로 대통령제 폐해를 해소할 수 있나.
“개헌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는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4년 중임제 개헌 논의를 제안했는데.
"4년 중임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 연임에 대한 국민적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이 후보가 선거용으로 내놓은 공약이라고 본다. 대통령 임기 5년도 견디기 힘든데, 제가 대통령을 8년 한다면 어떻겠나(웃음)."
-대통령이 되면 국회의 여소야대 구도를 극복할 방안이 있나. 정계개편을 시도할 건가.
“인위적인 정계개편 같은 꼼수는 안 쓴다. 김대중 정부 때도 여소야대였지만 경제 등 분야에서 성과를 많이 냈다. 여소야대라고 대통령이 일을 못할 건 없다. 대통령에게도 인사권, 예산편성권 등 막강한 권한이 있다. 야당과 협조하면 된다. 민주당도 행정권을 빼앗기면 많이 변해서 훌륭한 정당으로 재탄생할 거라고 기대한다.”
-이른바 '김건희 녹취록'이 확산시킨 무속 의혹을 해소해야 하지 않나.
“(아내가) 녹취록에서 ‘남편도 영적인 사람’ ‘내가 도사들하고 얘기하는 걸 즐긴다’고 했지, 무속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공적 결정에 있어 무속에 의존하느냐인데, 저는 판사 앞에서 증거로 싸우는 삶을 26년 이어온 사람이다.”
-퍼스트레이디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역할은 '대통령의 부인'이다. '영부인' '퍼스트레이디' 같은 말은 사실 별로다. 훌륭한 여성들이 많은 시대에 퍼스트레이디라는 용어 자체도 좀 그렇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영부인이라는 용어는 쓰지 말기를 부탁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우선 순위로 공약한 것은 편가르기 의도 아닌가.
“중도·보수에선 여가부가 역사적 기능을 이미 다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젊은 사람들은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남성이 약자일 수도, 여성이 약자일 수도 있다.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다.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면 된다.”
-한미동맹 복원을 힘주어 강조했지만, 한중관계 비전은 구체적이지 않다.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것인가.
"중국과 멀리할 필요는 없지만, 미중 사이의 등거리 외교도 맞지 않다. 등거리 외교가 가능한가. 중국은 공산ㆍ사회주의 국가이고, 북한과 군사동맹이다. 미국은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국가이고, 오랜 동맹이다. 동맹은 중요하다. 중국과는 경제가, 미국과는 경제, 안보가 다 걸려 있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이지만, 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 실패한 '힘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전략을 다시 쓰려는 것인가.
"평화는 대화로 이뤄지지 않는다. 대화가 통하려면 확고한 군사적 역량이 전제돼야 한다. 다만 힘만으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건 아니다. 힘을 갖되 대화로써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하겠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쇼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지 않겠다는 건가.
"그건 민주당식 선동이다. 무조건 그냥 만나선 안 되고, 결과가 있고 약속을 지키는 만남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휴전선에서 대치하는 남북 군 병력을 이동시켜 비무장 지역을 넓힌다든가, 서해 교전 등 우발 사태를 줄이는 근본적 합의를 한다면 실무 대화를 거쳐 서울, 평양 혹은 판문점에서도 만날 수 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한일 정상 셔틀외교' 등을 제시했지만, 과거사 문제 진전 없이 한일관계 개선은 불가능하지 않나.
“왜 꼭 과거사를 전제로 해야 하나. (과거사 해결과 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 트랙'으로 가면 된다. 양국 사이에 공동이익을 추구할 거리가 많으면 과거사 문제는 진실에 입각해 풀리게 돼 있다.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하지 말고,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자. 독도는 어차피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처럼) 일본 대사관에 독도 사진이 들어간 선물을 보낼 필요는 없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행, 위안부 피해자 관련 양국 합의 이행에 대한 입장은.
“일본이 강제동원 배상금을 아까워하는 건 전혀 아닌 걸로 안다. 배상을 강제 집행 하겠다니까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합의도 우리 정부가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않았기에 일본이 됐다고 하는 것 아닌가. 경제·안보 협력을 구축해 신뢰를 쌓으면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할 것이다. 미래지향적 관계가 확립되면 충분히 해결될 문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존폐에 대한 입장은.
“없앨 이유는 없지만, 공수처법은 정상화시켜야 한다. 공수처법상 검찰·경찰의 내사 첩보를 공수처에 다 보여줘야 한다는 건 독소조항이다.”
-6대 범죄 직접수사로 한정된 검찰 기능을 다시 확대해야 하나.
“검사 시절 검찰이 많은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것에 반대했다. 6대 범죄로 제한해도 수사를 제대로 하느냐가 중요하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되돌릴 필요는 없다.”
-대선 이후라도 대장동 의혹 관련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보나.
“부실 수사가 어이없긴 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다 해도 수사를 하라 말라 해서는 안 된다. 검찰 인사가 공정하게 이뤄져 검찰 체제가 정상화하면 부실 수사 문제가 규명될 것이다."
-쏟아낸 공약ㆍ정책에 드는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정책팀에서 돈 계산을 다 했다. 마구잡이로 발표한 공약은 하나도 없다. 세출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초과 세수를 감안하면 감당할 수 있다.”
-원전 강국을 강조하지만 원전과 폐기물처리시설 부지 선정 등 난관이 많다.
“에너지 문제는 현실론에 입각해 접근해야 한다. 4차 산업에 소요되는 전기량만 해도 엄청나다. 반도체 공장 하나에 들어가는 전력량이 대구시 하루 사용량이다."
-대학 입시제도를 개선할 특단의 대책이 있나.
“저명한 교육학자들에게 물어봐도 답이 없다고 한다. 지역을 다녀 보면, 농어촌 특별전형 등 수시 전형 덕에 대학 진학을 곧잘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수시가 부모의 치맛바람을 업은 학생에게 유리하다고 하지만, 100% 정시로 전환한다 해도 과외 열풍이 불 수 있어 문제다. 수시와 정시의 적절한 비율이 필요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