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을 놓고 일본 정부가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외무성은 신중한 쪽이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 등 자민당 보수파가 한국과의 ‘역사전쟁’을 언급하며 기시다 후미오 총리 측을 계속 몰아붙이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사도 광산을 추천할 수 있는 마감일은 2월 1일이다. 추천하기 전 각의(한국의 국무회의) 결정을 해야 하는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각의가 열린다. 마감 전 각의는 28일이 마지막 날이다. 그러나 27일 오후 늦게까지도 일본 정부와 외무성은 사도 광산 추천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28일 각의에 해당 안건이 올라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안건을 올리지 않을 경우 다른 날 임시 각의를 열거나 아예 마감 당일인 2월 1일 각의에서 통과시킬 수도 있다. 만일 추천을 보류한다면 굳이 각의가 필요 없게 돼 안건으로 올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추천을 한 해 보류하자는 외무성 의견과 반드시 올해 추천해야 한다는 자민당 보수파의 의견이 마지막까지 충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외무성의 오노 히카리코 보도관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추천서를 제출하기 전에 당사자 간 대화를 촉구하는 작업지침이 지난해 7월 채택됐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대해서는 같은 해 4월 일본이 주도해 회원국의 반대가 있으면 등재하지 않는 제도가 도입됐는데,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사전에 당사자 간 대화를 하라는 지침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이 사도 광산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데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추천하는 것은 유네스코의 이런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다.
반면 아베 전 총리는 같은 날 자정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신중론을 반박하고, 사도 광산을 이번에 추천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총리 시절 '군함도'(하시마·端島)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했을 때도 한국이나 미국의 반응 등을 거론하며 신중론을 펴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때도 추천해도 등록이 안 될 위험이 있었지만, 미룬다고 사태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썼다.
이어 “내년으로 미루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역사전(歷史戰)을 걸어 온 이상 피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을 강하게 몰아붙였던 다카이치 정조회장도 연일 방송 출연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드시 추천해야 한다고 공개 압박하고 있다.
TV아사히는 “정부는 반론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춘 뒤 해야 한다고 조정 중이지만 자민당 보수파는 추천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다”며 “마지막은 총리의 뜻에 달렸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