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워닝'이라는 단어가 있다. 콘텐츠의 특정 소재가 비슷한 이유로 심리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다시 한번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 있는 위험이 있을 때, 시작에 앞서 주의를 알리는 경고문을 의미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청소년 자살과 성폭력 문제 등과 관련해 비판을 받자 오프닝에 '트리거 워닝' 문구를 삽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경고 문구가 오히려 시청자로 하여금 정서적 충격을 받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폭력이나 범죄에 관한 현실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콘텐츠의 경우 간단한 언급은 필요하다는 쪽이다. 모든 사람이 콘텐츠를 보기에 앞서 꼼꼼하게 내용을 확인하거나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콘텐츠를 보다가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경험, 상처가 되살아나는 일을 경험하는 것보다는,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라는 인식을 하고 직면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인간의 기억이나 생각, 부정적인 감각, 심리적인 문제는 화면을 꺼버리듯이 전원을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간략한 주의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성적 폭력, 학대, 가스라이팅, 약물 중독과 같은 경험을 했거나 이와 관련된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시청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남성이 가해자인 사건을 겪었다면 더 복잡하고 예민한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단, '트리거 워닝'의 목적이 주의가 필요한 감상자를 콘텐츠를 볼 수 없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는 이 주의사항을 듣고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작품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작가 아라벨라(미카엘라 코얼)는 두 번째 책의 초고를 마감 중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밤, 술을 마시러 나오라며 친구들이 부르자 결국 아라벨라는 참지 못하고 바를 찾는다. 그리고 그 밤의 기억은 암전.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리며 정신을 차린 아라벨라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며 기억 속의 조각조각 잘린 장면들을 조립해 그 밤에 벌어진 일을 알아내려고 하지만 그 무엇도 정확하지 않다. 확실한 건 단 하나. 그 밤에 누군가 아라벨라의 술에 정신을 잃게 만드는 약을 탔고, 이후 아라벨라가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는 그 밤의 기억을 되살려 강간범을 잡으려는 아라벨라의 노력과 그 기억에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기 위한 온갖 시도들, 그리고 그날을 떠나오지 못하면서 서서히 망가지고 변해가는, 그럼에도 회복을 바라며 애쓰는 아라벨라의 짧지 않은 여정을 따라간다. 이 작품의 창작자이며 모든 에피소드를 쓰고 연출한 미카엘라 코얼은 아라벨라를 직접 연기하며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방식이나 그가 겪게 되는 일을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독창적으로 보여준다. 아라벨라는 쏟아지는 감정과 기억을 감당하기 벅찰 때면 중얼거린다. "세상에는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다. 시리아에는 내전 중이다. 모두에게 스마트폰이 있는 건 아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비극과 내가 겪은 고통을 비교해서 자신의 것을 한없이 작게 만드는 전략이다.
아라벨라의 말을 들은 상담사는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작은 그림에 대한 시야는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죠. 여기서 작은 그림은 당신이에요." 아라벨라의 얼굴을 한 미카엘라 코얼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큰 그림 대신에 작은 그림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건 바로 '나의 이야기'다. 극 중에서 아라벨라는 강간을 당하기 이전까지는 흑인이라는 인종 정체성과 빈곤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갖게 된 계급적 정체성이 자신에게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강간 경험 이후,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분명히 자각하게 되자 세상이 바뀐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질문도 이어진다. "고통받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내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성공적으로 4시즌까지 완주한 '추잉검'이라는 시트콤으로 이미 창작자로서, 배우로서의 재능을 증명한 미카엘라 코얼 역시, 성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는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의 관계와 맥락이 얽힌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평소의 행실을 문제 삼아 범죄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나의 경험과 고통이 사회적 기준에서 용인되는 수준의 피해인지를 검열하게 되고, 피해 사실을 알린 뒤에도 의심받고 낙인이 찍히고 마는 이 고통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는 복잡한 일을 복잡하게 이야기하기를 택한다.
아라벨라의 친구인 콰미(파파 에시에두)가 동성 강간 피해자로서 겪는 경험은 이성애자 여성인 아라벨라와는 또 다른 양상을 띤다. 아라벨라와 친구들이 영국 사회에서 인종적 소수자인 흑인으로서 겪는 경험도 마찬가지다. 강간 사건 이후 아라벨라는 모든 사건과 관계에서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고 선을 그으려고 한다. 하지만 상담사는 아라벨라에게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없어요." 나쁜 것과 좋은 것, 친구와 적,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 그들과 우리, 가해자와 피해자, 신과 악마 같은 것이 뚜렷한 선으로 구분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내가 속하지 않은 나머지를 회피하거나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선을 지우지 않고, 혹은 이 선을 내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서 세계와 나, 내가 겪은 일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선을 긋지 않고, 뒤섞인 것은 뒤섞인 대로, 모순되고 어긋난 것 역시 그대로 보여주면서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는 질문한다. 열어보지 않고 침대 밑에 숨겨 둔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왜 만나야 하는지를.
이 부분에서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는 그 어느 작품보다 현재형이다. 미카엘라 코얼은 '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아라벨라의 무기이기도 한 SNS가 목소리를 내게 하는 대신 들어주는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도구임을 알려준다. 성폭력과 학대, 가스라이팅, 인종 갈등과 젠더 문제, 정신 건강과 같은 가장 첨예하고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 모든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한국에는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여전히 그 빛이 바래지 않은 문제작이다.
지나치게 주의가 많은 것 같아 망설여지지만, 스포일러 주의와 더불어 결말에 대해서 짧게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말은 아라벨라가 아닌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맺어지며 시청자가 기대하는 결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작품을 결말까지 보기만 한다면, 닿아야 마땅한 끝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가 몇 번을 다시 쓰고 고치고 상상하고 수정하며 닿는 '끝'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할 일을 넘치게 다 한다. 아라벨라의 여정 역시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지켜보면 의미가 생기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카엘라 코얼은 누군가 보게 만들기 위해 이야기에 애써 재치나 유머를 욱여넣지도 않지만, 반대로 이 모든 이야기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아둘 생각도 없다. 휴식, 곱씹기와 더불어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아라벨라의 회복을 위한 덕목 중 세 번째인 '활기를 되찾기'는 이 작품이 보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아라벨라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이런 소재를 만날 때 끌어올려질 기억이 두렵거나 부딪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시청자라면, 아마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만날 때 주의가 필요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를 끝까지 시청하는 일은 심리치료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 이 효과의 검증이 필요하다면, 내가 당사자라고 말하겠다. '트리거 워닝'의 의미가 시청에 주의를 요한다는 것이지, 시청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학대와 착취는 여성 중 50%가 겪는 일이다. 영국의 통계지만 한국도 아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만 19세 이상의 당신이라면, 아라벨라와 함께 무너지고, 쓰러지고, 화를 내고, 파괴하고, 박살 내고, 마주 보고는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다음에는 일어나서 숨을 쉬고, 활기를 되찾기를. 살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