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입력
2022.02.0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경기 부천시는 지난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며칠 앞두고 위탁청소업체에 부랴부랴 청소차 뒷발판을 제거하라고 통보했다.

청소차 뒷발판은 쓰레기 수거지점들의 거리가 워낙 짧은 탓에 차량 앞쪽에 있는 높은 조수석을 오르내리며 작업하는 게 불편하다 보니 불법으로 개조된 것이다. 자동차관리법상 불법 튜닝에 해당할 뿐 아니라, 현행 도로교통법에도 위배된다. 실제 차 뒤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가다 보면 음주운전 차량에 들이받히거나 도로에서 떨어져 치이는 등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환경미화원 산재 신청의 90% 이상이 추락·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골절 때문이라는 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자체나 용역업체들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쓰레기 수거 효율과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그간 눈감아 왔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환경미화원 부상은 산재면 보상해주고, 아니면 말고 식의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환경미화원의 부상이 곧 자신들의 일이 되자 돌변했다. 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사고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하청업체 대표는 물론, 시장까지도 처벌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청소차 뒷발판만 떼면 환경미화원은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니다. 하루 8시간 동안 차량 1대당 약 100㎞를 이동하며 폐기물 3~4.5톤을 수거해야 하는데, 높은 조수석에서 승하차해 가며 이를 다 감당할 재간이 없다. 쓰레기를 골목마다 일일이 수거해야 하는 빌라나 단독주택 밀집 지역은 더욱 그렇다.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는 뒷발판 제거를 위해 △현행 3인 1조 규정을 4인 1조로 늘리거나 △매일 수거를 격일제 수거로 변경하거나 △저상형 차량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4인 1조가 되면 한 사람이 미리 내려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두는 방식으로 승하차 횟수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올해 예산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추경을 하지 않는 이상 연내 증원은 어렵다. 일일 수거를 격일제로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다. 거리에 쓰레기가 쌓이면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결국 저상형 차량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 또한 흠이 있다. 뒤에 매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 조수석과 쓰레기칸 사이에 좌석을 마련했다지만, 한 사람은 운전석 뒤쪽에서 승하차를 해야 해 매번 교통사고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뒷좌석 때문에 차에 실을 수 있는 쓰레기 용량이 줄었다. 2018년부터 보급하겠다던 '한국형 저상차' 보급률이 지난해까지 1%에 그친 이유다. 기계적 한계 등 요인도 있다지만 결국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개발해놓고도 도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법 시행 전부터 기업과 중앙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안전 컨트롤타워 조직을 만드는 등 분주한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환경미화원 사례처럼 여전히 준비가 미흡한 분야가 남아 있다.

법 제정 후 1년여의 시간이 있었다.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 이 법에 대응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해서 도리어 노동자의 노동을 더 힘들게 하거나 이들을 사지로 내몰아선 안 된다. 진정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법의 취지를 살피고 뭣이 중헌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