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의 도서관과 학교에서 21세기판 ‘분서갱유’ 운동이 번지고 있다. 인종 차별, 성소수자(LGBTQ), 페미니즘, 성(性) 관련 도서를 금서 목록으로 지정하라는 공세가 잇따르면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한 '문화전쟁(Culture War)'의 최전선에 금서 공방이 등장한 셈이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도서관협회(ALA)가 확인한 지난해 9~11월 금서 요청은 330건에 이르렀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원격교육이 주를 이뤘던 2020년(금서 요청 156건, 책 273권), 코로나19 유행 전이던 2019년(금서 요청 377건, 책 566권)과 비교할 때 급증 추세다. ALA는 학교나 도서관이 책을 대여하지 못하게 하거나 교육청이 수업에서 배제하도록 할 때 ‘금서’가 된 것으로 간주한다.
금서 요청 도서 목록과 지역도 다양하다. 지난해 11월 버지니아주(州) 스팟실배니어카운티 교육위원회는 게이 관계를 다뤄 호평을 받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성폭력에 희생된 노숙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 ‘33 스노피시’ 등을 금서 대상에 올렸다. 이 책들이 ‘성적으로 노골적인 도서’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미 캔자스주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과 페미니즘 고전 소설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가 금서 목록에 올랐다 해제되는 일도 있었다.
텍사스주에서도 주법무장관에 출마했던 맷 크라우스 주하원의원이 지난해 10월 850권의 도서를 금서 목록으로 지정하라고 요구하면서 한바탕 이념 갈등이 이어졌다. 850권에는 ‘미국의 흑인 역사’, ‘세계인권선언’, ‘시녀 이야기’ 등까지 포함돼 논란이 커졌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인종, 성, 동성애 정체성 중심 이야기에 대한 반발이 공화당 주류 정치의 일부가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남부와 중서부주나 시골 카운티를 중심으로 특정 주제 도서의 금서 지정 운동이 거세다.
게다가 미국 내 인종 차별은 백인 위주 사회 체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ㆍCRT)’을 타깃으로 하는 공화당과 보수 기독교 운동이 금서 운동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11월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승리에서 확인됐던 미국 학교 내 문화전쟁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악시오스는 “중간선거의 해인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좌절, 체계적인 인종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에 대한 백인 교외 시골 학부모의 역공이 공립학교를 문화전쟁 폭탄의 중심 지점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 교육위원의 입에서 “우리가 이 책을 불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공식 회의에서 나오는 게 21세기 미국 교육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