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파트 붕괴 같은 사고가 2월에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막막합니다.”
최근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한 눈높이는 한층 더 높아졌다. 오는 27일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의 비현실적인 부분을 강력히 성토하던 관련 기업들의 목소리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연일 휘청이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운명을 지켜 본 관련 업계는 “자칫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극심한 공포를 맞닥뜨린 상태다. 일선 현장에서는 막바지 분주한 대비 속에 “제발 첫 타깃이 되는 것만 피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23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근로자나 시민이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표이사(사업주나 경영책임자)급에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개인사업주, 법인,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안전사고에 따른 사망자(1명 이상), 부상자(2명 이상), 직업성 질병자(3명 이상)가 발생했을 때 최상위 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다. 법에 따라 경영책임자는 재해예방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행할 의무를 진다.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 인과성과 고의성이 인정되면 대표와 법인 모두 제재 대상이 된다.
이번 광주 사고는 수개월 전부터 사고 징후가 있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부실 시공 가능성까지 제기돼 법 시행 이후 발생했다면 현산에 대한 강력 처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경영책임자와 법인에 법원이 최대 4중 제재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사망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잘못이 인정되면 법원은 징역 1년 이상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처벌을 내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징역과 벌금이 동시에 가능하다. 경영책임자는 손해액의 최대 5배인 배상책임도 져야 한다. 법인엔 따로 50억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형이 확정되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해당 회사를 중대재해법 위반사로 1년간 공표하게 된다.
쇠고랑을 차는 책임자가 여럿일 수도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영책임자 여부를 따진다"고 말했다. 현산의 경우 정몽규 회장이 이미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어도 정부의 해석 여부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업도 수사기관의 고강도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중대재해법에 따라 사업주의 잘못을 입증하려면 본사를 포함한 전방위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부의 지방노동관서 광역중대산업재해관리과가 본사 압수수색 등 1차 조사를 한 뒤 검찰로 사건을 넘기면(송치), 검찰이 추가 수사를 이어가게 된다. 이뿐 아니라 경찰, 국토교통부, 각 지방자치단체 등도 기존 산업안전관리법(산안법),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에 따른 조사에 착수한다.
자연히 처벌도 쏟아질 수밖에 없다. 현산 실무진은 산안법으로, 경영진은 중대재해법으로, 법인은 건산법에 따라 영업정지 등을 당하는 식이다.
기업들은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실제 중견기업 A사는 지난해 중대재해법 대응을 위해 대형 로펌에 수억 원의 자문료를 내고 종합 컨설팅을 받았다. 회사로선 당장 대표이사 구속으로 경영 공백 사태를 맞는 것이 가장 우려 대상이다. A사는 결국 로펌의 컨설팅대로 회사 안전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책을 새로 만들고, 기존 1인 대표이사 체제를 최고경영책임자(CEO)와 CSO 2인 체제로 바꿨다.
재해사고 가능성을 안고 있는 대기업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LG디스플레이 역시 CEO 수준의 권한을 갖는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 직책을 신설했다. 롯데케미칼은 향후 3년간 안전환경 부문에 5,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포스코는 그룹 차원의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했다. 삼성물산도 부사장급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고 안전조직을 확대했다. 호반건설도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선임해 각자대표 체제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실제 법 시행 후 어떤 충격이 닥칠지에는 대부분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건설사 임원은 "대형사고가 터져 여론까지 돌아서면 정부 제재가 중복으로 쏟아질 텐데 과연 회사가 이런 제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우려가 결코 엄살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중대재해법은 재해사고 때 사고와 직접 관련 있는 현장소장 같은 실무진 처벌에 초점이 맞춰진 산안법과는 법 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특정 개인을 처벌하는 세계 유일의 법인 데다 처벌 수위도 가장 세다"고 말했다.
이에 대략의 준비 작업을 마친 대기업·중견기업(상시근로자 50인 이상)들조차 아예 현장을 멈춰 세우는 초강수로 맞서고 있다. 실제 ‘현산 학습효과’를 지켜본 상당수 건설사들은 아예 설 연휴 전후로 최대 열흘 가까이 현장을 셧다운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중대재해법에 대한 기업의 위기감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영식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존 산안법 체제에서도 사건의 99%는 집행유예로 끝나는 게 현실”이라며 “기업이 안전조치를 철저히 하면 사고가 터져도 처벌을 받지 않는 만큼 중대재해법은 기존 법을 보완한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법 취지와 무관하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세한 의무를 경영책임자에게 지울 수 없어 관리 의무 등을 포괄적으로 적어놓다 보니 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할 여지가 적잖아서다. 김동욱 변호사도 "정부 해설서를 보면 법에 근거가 없는 예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교수도 "기업이 안전예방에 써야 할 돈을 로펌에 거액의 자문료로 내는 현실이 과연 맞느냐"며 "이런 비용은 결국 하청업체나 소비자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사망사고가 터져 경영책임자가 수사 대상에 오르면 길게는 수년을 재판에 시달려야 하는데 과연 처벌에 의존하는 이런 조치가 산재사망자를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를 낼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