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도로서 사고 나면 ‘단체장’ 책임… 중대재해법 시행에 지자체도 비상

입력
2022.01.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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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사고 시 1년 이상 징역·10억원 이하 벌금
도로, 하천, 항만, 공중시설·교통수단에 광폭 적용
지자체, 중대재해 예방계획 마련·인력 확충 분주


2018년 8월 28일 내린 폭우로 서울 중랑천이 범람했다. 동부간선도로 월릉교 부근을 지나던 차들이 침수됐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40대 A씨가 사망했다. 유족은 폭우 예보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사전 통제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라면서 경찰과 서울시설관리공단을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A씨의 죽음은 누구도 책임지는 일 없이 천재지변에 의한 개인적 ‘불운’이 되고만 셈이다.

그러나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산업 현장뿐 아니라 A씨 사례처럼 일반 시민의 중대재해도 책임 소재를 가리게 되고, 이에 따라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가 안전 확보를 위한 예산과 인력 증원에 나선 이유다.

20일 행정안전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체육관, 어린이집, 놀이터 등 공중이용시설, 지하철 교통수단 등에서 중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해당 사고가 관할 지자체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위반에서 비롯했다고 인정될 경우 지자체장은 처벌을 받게 된다. 사망 사고라면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 부상 사고는 7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형에 각각 처해진다.

중대재해법이 단체장 책임 영역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점도 지자체가 긴장하는 이유다. 법안에 따르면 △도로, 하천, 항만 △연면적 5,000㎡ 이상 종교·판매·의료시설 △객석 1,000석 이상 실내공연장·체육시설 △연면적 2,000㎡ 이상 지하도상가·도서관 △연면적 1,000㎥ 이상 노인요양시설·장례식장 △연면적 430㎥ 이상 어린이집·실내 어린이 놀이시설 등이 법 적용 대상이다. 여기엔 도시철도, 시외버스, 항공기, 여객선 등 공중교통수단도 포함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상 시 전체를 중대재해법 적용 시설로 봐야 한다”며 “공중교통수단 대상에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는 빠졌는데 시외버스가 포함된 것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내 시설 전반의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할 판이지만, 각 시설의 규제 담당 중앙부처는 제각각이란 점도 지자체의 대응을 어렵게 한다. 예컨대 중대재해법 교육과 대상 시설 현황 파악은 행안부가 담당하고, 산업 안전은 고용부, 중대 시민 재해는 국토부가 맡는다. △시설 공기질·급수시설(환경부) △전기·도시가스(산업통상자원부) △체육시설(문화체육관광부) △소방시설(소방청) 등은 관할 부처가 또 다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규제 내용과 추진 상황 파악도 어렵지만, 재해 분야에 따라 담당 부처가 다르다 보니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며 “중앙정부에서 중대재해법 컨트롤타워를 먼저 구축해야 지자체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와 산하 기관은 ‘중대재해 예방 종합계획’ 수립, 관련 예산과 인력 확충 등 눈에 보이는 대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중대 시민 재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단체장이 관련 조직을 꾸려 인력을 늘리고 해당 업무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 배정하는 노력을 했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며 “예산과 인력 증원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류종은 기자